노르웨이는 인구가 적다보니 ‘마을’의 개념이 아직도 강한것 같다. 오슬로야 대도시이니 별로 그렇지 않겠지만 베르겐만해도 이웃사촌의 느낌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 같다.


이웃사촌의 개념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전통이 바로 ‘dugnad’라는 것이다. 공동체안에서 힘을 합쳐 해야하는 일이 있을 때 이것을 ‘공동체의 의무’라는 이름하에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흔한 것이면 노르웨이어를 배우는 교과서에도 종종 등장하곤한다. 예를들면 아파트 단지 내에 쌓인 낙엽을 치워야 한다던지 할때 dugnad라는 이름으로 한 날 함께 일을 하고 이날 안온 사람은 돈을 낸다던지 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동체의 모습이 남아있는 것이 좋은것 같은데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좋은 의미에서 시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항상 dugnad라는 이름하게 하게 만들다보니 사람들이 싫어하는 단어가 되었다고 하더라. ㅎㅎ


노르웨이에 살며 정말 이웃이 좁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던 적은 바로 같은 동네에 사는 파파의 동료분 생일잔치에 갔을 때였다. 초대받아 온 여러 사람들중 어떤 무리는 학교때 친구들, 어떤 무리는 회사 동료들, 그리고 한 무리는 이웃들이었다. 회사 동료분들은 이미 아는 사람들인지라 그들과 어울리다가 우연히 이웃들 무리에 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우리 소개를 하면서 우리도 사실 이동네에 산다고 했더니 그분들 말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이 아랫길에 빨간 집이죠?’하는 것이었다. @_@ 우리는 한번도 얼굴도 본적이 없는분들이었는데 그분들은 우리를 이미 알고 있었고 알고보니 우리집 주위에 살고 계신분들이었던 것이다. 우리야 연고도 없는 외국인이니 기껏해야 우리 옆집 사람들이나 알고 지냈는데 주위의 다른 이웃들은 이미 우리에 대해 다 알고 있었던 것이 참 놀라웠다.


그러다가 작년 집을 사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예전에 살던 곳과 같은 동네이기는 하나 지금 사는 곳은 막다른 골목에 있는 곳이라 이곳은 정말 서로를 다 아는 그런 곳이더라. 더군다나 더스티를 산책시키다가 개가 있는 다른 이웃들과 함께 산책을 하게되는 경우도 있어 이웃들을 꽤 여러명 알게 되었다. 여름엔 이웃집 사람들과 바베큐 파티를 한적도 몇번 있고 심지어는 자신의 오두막에 우리를 초대한 분들도 둘이나 있다 (노르웨이 사람이 오라고 하면 진짜로 오라는 것이라고 한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체통 주변 나무 가지치기를 하라는 우체부의 통보가 있어 우리가 직접 나서서 봉사를 한적도 있다.


몇달전에는 옆집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옆집이지만 잘 아는분이 아니어서 고민하다가 그분의 장례식에 갔는데 할아버지가 얼마나 놀라고 좋아하셨는지 모르겠다. 다른 이웃분들도 몇분 오셨는데 자신들이야 십수년동안 알고지내던 사이지만 우리는 이사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장례식에 왔다며 칭찬을 하셔서 우리도 진정한 이웃이 된듯하더라.


이렇게 이웃간에 정을 나눌 수 있는 곳이 노르웨이이기는 하나 정만 있는 것은 아니더라. 이웃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누구는 누구와 사이가 안좋고 그런 이야기들도 듣게된다. ㅎㅎ 예를들면 우리 옆집 사람들은 우리 윗집에 사는 사람들과 인사도 안하는 사이인데 그 이유가 우리 윗집사람들의 차고 일부분이 우리 옆집 사람 땅에 지어져서 그렇다는 것이다. ㅋㅋㅋ 처음 이사온뒤 그것을 알게된 옆집 사람이 (직접 가서 왜 그렇냐고 물어봤으면 될것을) 시청에 민원을 넣었고 그것이 윗집 사람 귀에 들어가게 되서 그런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고 왜 자기 눈에 보이는 곳에 자기가 싫어하는 나무를 심냐 등등으로도 서로 욕을 하고 싸우고 그런다는 것이었다. ㅎㅎ 순박하고 착한 노르웨이 사람들인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이웃들의 가십을 듣고있자하니 참 신세계가 따로 없더라. 다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대체 왜때문에...


하여간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하고 이웃은 너무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안되는 사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ㅎㅎ 막역하지만 막연한 사이. 이웃사촌.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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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남부지방에서는 새해 전날 저녁 만찬으로 라클렛을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이번 새해 전날 저녁으로 라클렛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라클렛 치즈를 구하는 것이다. 노르웨이에서는 라클렛 치즈를 팔기는 파는데 구하기가 매우 힘들다. 예전에 Kjøtbasaren이라는 곳에서 팔았는데 안타깝게도 그곳은 문을 닫았고 Meny라는 슈퍼마켓에서 파는데 겨울에만 팔고 언젠가 한번 물어봤더니 자기들도 공급자가 가져다줘야 파는 것이고 아니면 없는거라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는 라클렛 치즈가 보이면 사재기를 하는데 11월말쯤에 한번 보이더니  안보이더라.

 

이번에는 한번 물어나 보자 하고 Meny에서 물어봤는데 정육점 아저씨가 하시는 말씀이 11월에 잠깐 나왔다가  이후에는 못봤다고...

...맞습니다. 그때 11월에 잠깐 나왔을때 사재기를  사람이 바로 접니다 ㅠㅡㅠ

아저씨는 창고에 가서 한번 찾아보겠다고 하고는 사라지셨다. 파파와 나는 거의 포기하고 라클렛 치즈가 없는면 뭐로 대체할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저씨가 엄청 신나는 목소리로 찾았어요! 창고에 재고가 있었네요.’ 이러면서 얼만큼 자르면 되겠냐고 물어보시는거였다. ...이렇게 신날수가. 그래서 우리는 그냥 그거  주세요! 이걸 구하기가 얼마나 힘들대요.’ 하고 1.5킬로그램이나 하는  덩어리를 통째로  사버렸다.

 

우리 때문에 창고까지 가서 재고가 있나 없나를 보는 것이 귀찮을수도 있었는데도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해주신  아저씨는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가. 우리는 치즈를 구했다는 생각에 마치 작은 승리를 얻은  같았다.  

 

이렇게 힘들게 얻은 치즈로 2016 마지막 메뉴는 라클렛이   있었고 우리는 한해의 마지막을 기분 좋게 보낼  있게 해준 이름도 모르는 슈퍼마켓의 정육점코너 아저씨에게 감사했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자정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발코니에서 샴페인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폭죽놀이를 즐기며 (노르웨이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자정에 미친듯이 경쟁하듯 폭죽을 터뜨린다 생각이...누군가의 작은 정성이 이렇게 사람을 즐겁게 해줄수도 있는거구나 하는거다. 앞으로 새해에는 작은일에 감사하며 보내야지...이렇게 생각했건만 새해가 지난지 한달도 되지 않아 벌써 그때의 마음이 조금 흐려지고 있다. ㅎㅎㅎ





 

이렇게 나약한 인간이란 ㅎㅎㅎ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작은일에 감사하고 즐거워하며 화는 큰일에만 내야하는데 나란 인간은  이와는 반대로 살고 있다. 이렇게 항상 뒤늦게 반성을 해대지만 나는 사실 작은일에  화내고 다른 사람의 친절에  감사할줄 모르는 평범 이하의 사람이다. ㅠㅡㅠ 스크루지 영감처럼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하는   힘든거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노력하면 조금  나은 사람이   있으려나. 그래도 그때마다 생각해야지. 정육점 아저씨의 작은 친절 때문에 얻게된 라클렛 치즈가 얼마나 우리를 기쁘게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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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퍼에 흔하게 파는 라클렛치즈가 그곳에서는 그리 귀한 음식인지 몰랐습니다. 가끔씩는 spar (슈파) 에서 1+1 가격으로도 팔던데... 쇼핑하러 독일로 내려오시기에는 무리가 있겠죠? (전 오스트리아에 살지만, 독일과 같은 슈퍼마켓들이 존재하니..)

    • 우왕~~오스트리아에 사시는군요. 비엔나에 사시나요? 오스트리아는 너무 살기 좋을것 같아요. ^_^
      오스트리아에서도 라클렛을 많이들 먹나보네요. 저는 스위스, 프랑스, 독일 남부에서만 흔하게 먹는 것인줄 알았어요. 저는 남편이 독일인지라 라클렛을 독일식으로 먹는데 (고기와 치즈 위주) 작년에 취리히에 갔다가 레스토랑에서 라클렛을 시키고 너무너무 실망을 했어요. 거기선 라클렛을 치즈와 감자 위주로 먹더라구요. ㅎㅎㅎ

나는 7살부터인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서 고등학교때까지도 레슨을 받을 정도로 피아노를 열심히 쳤다. 누가 시켜서 그랬다기보다는 그냥 내가 피아노가 너무 좋아서 항상 열심히 연습을 했던지라 나는 피아노 선생님들의 로망인 그런 학생이었다. 한때 예고에 가고 싶다고 떼를 쓴적도 있었는데 우리 집이 나를 예체능을 시킬 정도로 여유가 있는 집도 아니었을  더러 사실 예고에 갈만큼 그리 열심히 피아노를 친것도 아니어서 그땐 나는 재능이 없어라고 생각했었다. 어렸을땐  재능이 없었다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하루에 8시간 피아노를 연습해보고 나서 재능이 있나 없나 한번 생각해보자라고 생각하지 못했나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하루에 8시간 국영수를 공부하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지만 하루에 8시간 피아노를 연습하면서  남은 시간에 국영수를 공부하는건 엄청 힘들었을  같다. 나는 그렇게 그냥 평범한 고등학교를 갔고 이공계열 전공에 대학을 갔다.

 

그렇게 고등학교 이후엔 피아노를 잊고 지냈는데 미국에 살며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랑 함께  집을 보러갔는데 거실에 매우 오래된 피아노가 있었다. 물론 살던 사람들이 이사를 가며서 피아노도 함께 떠나갔지만 그걸 계기로 매우 싸구려 피아노를 한대 구입해서 치기 시작했다.  신기한것이 안친지 10년이 거의 다되었는데도 다시 치기 시작하니 얼마  고등학교때와 비슷한 실력으로 되돌아 오더라. 미국에서는 가난한 유학생이었던지라 레슨을 받는다는 것은 꿈도 못꾸고 그냥 혼자 치고싶은 곡들을 치는 정도였다. 엄청 열심히 치는 것도 아니었으면서 여러번 이사를 다니며 피아노를 이리끌고 저리끌고 다니느라 지쳐 나중엔 누구에게 그냥 줘버렸다.

 

노르웨이에 오면서 다시 피아노 생각이 나서 전자 피아노를 사고 말았다. 나름 전자피아노에 대해 안좋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전자피아노를 사러 야마하 대리점에 갔다가 정말 놀랐다. 요즘은 기술이 이렇게 많이 좋구나 ㅎㅎㅎ 물론 진짜 피아노와는 여전히 차이가 있지만 요즘 전자피아노는 정말 소리도 건반의 무게도 진짜 피아노와 많이 비슷해졌다. 어떤 피아니스트의 말에 의하면 왠만한 콘솔 피아노에 비하면 전자피아노가 그랜드와  비슷하다고까지 하더라.

 

어른이 되고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하면서 놀랐던 점이 있는데 어렸을때보다 집중력이 뛰어나져서 그런지 오히려  잘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예전엔 에이 이런 곡은 기술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나는 못쳐.’ 이렇게 생각했던 곡들도 요즘은 칠수가 있다. 아줌마가 되고나니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어져서 그런가 ㅎㅎㅎ 진짜로 집중해서 연습을 하니  많은 것이 가능하더라. 어차피 악기를 다루는 능력이라는 것의 절반 이상은 동작의 기억에서 오는 것이라 정말이지 연습이 정답이더라. 올림픽 양궁선수들이 훈련을   방금 자다가 깨서도 눈을 감고도 과녁을 맞출  있을 정도로 연습을 한다고 하는데  예전엔 음악은 타고난 능력이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했나 모르겠다. 요즘 드는 생각은 피아니스트들도 마찬가지인것 같다는 . 얼마나 연습을 했으면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박히고 몇시간이나 되는 콘서트를  외워서 그리고 눈을 감고도   있겠나.

 

노르웨이에 와서 부쩍  열심히 연습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아는 언니가 피아노 선생님을 소개해줘서 올봄부터 레슨을 다시 받기 시작했다. ㅎㅎㅎ 고등학교 이후 처음 레슨이라니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새로운 피아노 선생님은 베르겐에서는 나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일본인 콘서트 피아니스트 마이 고토이다. 베르겐에는 여름마다 Grieg in Bergen이라는 작은 실내악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거기서 종종 봤던 분인데 나의 선생님이 된다니 너무 신이 났다.


 

마이는 전문적으로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콘서트를 주로 하는 피아니스트인데 나는 이런 마이가 흔쾌히 레슨을 하겠다고 해준 것이  고마웠다. 그런데 마이는 오히려 자신에게는 나같은 성인 학생은 신기한 존재이기도 하면서 약간은 영감을 주는 존재라 좋다고 하더라. 심지어는 레슨비도 매우 많이 깎아줘서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레슨을 받게 된것은 물론 얼마나 열정적으로 가르쳐주는지 내가 엄청 미안할 정도이다. 보통은 한번 레슨을 하면 다른 학생들은 30분에서 한시간정도 가르친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한번 레슨을 하면 레슨비는 한시간치만 받으면서도 두시간 넘게 가르쳐줄때가 대부분이라 나도 그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  ㅎㅎㅎ 열심히라고 해봤자지만 그래도 요즘은 학생때처럼 일주일에 대여섯시간정도씩 연습을 하는  같다.

 

나는 사실 드뷔시, 라벨, 뿔랭과 같은 19세기말 프랑스 작곡가들의 곡을 치는  좋아하는데 마이는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슨 같은 고전을 주로 연주하는 사람이라 나름 타협을 해서  레슨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 Op13 비창을 같이 연습하기로 했다. 어렸을적에 이미 몇번 쳤던거라 다시 치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서  곡을  레슨 곡으로 꼽은건데 레슨을 몇번 받고 나서 정말 놀랐다. 몇번의 레슨으로 내가 들어도 만족스러울 만큼  해석이 향상되다니. 이렇게 되고 나니 연습하는게 너무나 즐겁더라. 게다가 콘서트 피아니스트인 선생님이 작곡가와 곡에 대해 열심히 디스커션을 해주니 다른것보다도 곡을 해석하는 능력이 생긴것 같아 매우 마음에 든다.

 

그렇게 몇번 레슨을 받았는데 어느날 마이가 날더러 콘서트를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하더라.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친구 피아노 선생님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모아서 학생 콘서트를 하려고 하는데 나도 한곡 치라는거다 ㅎㅎㅎ 꼬맹이들 사이에서 아줌마 학생이 치면 너무 웃기지 않겠냐고 했더니 꼬마들은 다들 소품을 연주하는데 내가 나가서 베토벤의 소나타처럼  작품을 연주하는것도 나름 괜찮을것 같다고 해서 나도 참가하기로 했다.

 

나는 7살부터 열심히 피아노를 쳤지만 항상 그냥 나를 위해 피아노를 쳤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연습을 한적은 거의 없는데 레슨을 받게 되면서 생각했던   하나가 나는 그냥 자기만족으로 피아노를 치다보니 뭔가  하나를 완벽하게 친적이 별로 없는  같아 레슨을 받으며 그런점을 보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콘서트를 한다고 했으니   완벽하게 연습을 해야하지 않겠나. 게다가 꼬맹이들 사이에 아줌마가 피아노를 치러 나왔는데 못치면 너무 부끄럽지 않겠나 ㅎㅎㅎ 그래서 더더욱 맹연습에 돌입하게 되고 ㅋㅋㅋ

 

콘서트를 위해 선생님들이 준비한 곳은 베르겐 피아노 사회에서는 나름 유명한 Reksten Collections라는 곳인데 갤러리 같은 곳에 엄청 좋은 그랜드 피아노가 몇대 있어서 이곳에서는 종종 작은 콘서트도 하고 피아노 마스터클라스 같은 것들을 한다고 한다. 나는 마이가 콘서트를 하겠냐고 물어봤을  가장 먼저  생각이 비싸면 어쩌지 였는데 이곳을 하루 오후 빌리는데 드는 비용은 노르웨이 돈으로 1000크로네. 한국 돈으로 하면 15만원이 조금 안되는 돈인데 놀랍다. 이렇게 저렴하다니. 자신은 피아노 협회 회원이라 50% 할인을 받은 가격이었다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저렴하지 않은가. 게다가 대여 비용은 콘서트 당일 학생을 제외한 관람객들 (학생들의 부모, 친구들, 조부모들) 에게 일인당 50크로네를 받아 충당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노르웨이스러운가 ㅎㅎㅎ 나중에 선생님에게 돈이 모자라면 내가 나머지를 내겠다고 했는데 콘서트가 끝나고 돈이 남았다고 한다.

 


약간 떨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콘서트에 참여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던 것이 콘서트장의 그랜드 피아노는 대망의 스타인웨이였기 때문이다.  피아노 한대가 한국돈으로 거의 1억정도이다. ㅎㅎㅎ 언젠가는  한번 만져나보고 싶었던 콘서트 스타인웨이 ㅠㅡㅠ 정말 감동적이었다. 스타인웨이는 6살짜리 꼬마도 ~’ 하며 감탄을 할정도로 놀랍도록 아름다운 소리를 냈고 이런 피아노로 연주를   있었다는  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 콘서트였다. 콘서트는 6 꼬마부터 시작해서 여러명의 10 초반부터 후반까지의 학생들의 연주가 끝나고 전혀 학생같지 않은 정체 모호한 내가 마지막 연주를 했다. 나도 연습한만큼 만족스러운 연주를 해서 기뻤는데 선생님도 연습 열심히  만큼  쳤다고 기뻐하더라.

 

나는 아줌마가 학생들 사이에 껴서 연주를 한다는 것이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어린 학생들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은 엄마 손에 이끌려서 하기 싫어도 억지로 피아노를 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계속 그렇게 꾸준히 치다보면 어른이 되어 정말 너무나 행복해지는 취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사실은 연습을 열심히 하기 시작면서 생각했던 것은 5년에 한번 열리는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일반인 부분에 도전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얼마 전에 열린 일반인 콘서트 비디오를 보고 금새 포기했다. ㅎㅎㅎ (,.)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노 콩쿠르인데 5년에 한번씩 35 이상이  일반인 참가자를 대상으로 콩쿠르를 연다. 진로 선택의 기로에서 콘서트 피아니스트와 다른 직업을 두고 고민을 하다가 피아노를 포기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콩쿠르라는데 그냥 나같은 일반인들이 아닌 사람들이더라. 거의 왠만한 콘서트 피아니스트 못지 않은 실력에 직업도 엄청 다양해서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관두고 주부가  사람들도 있지만 변호사, 의사, 대학 교수 등등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실력도 굉장하더라. ㅠㅡㅠ 세상엔  굉장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어떤가  콩쿠르를 나가려고 피아노를 치는게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 열심히 치는것은  가지있는게 아니지 않나.

 

콘서트가 끝난  약간 공백기를 가진  다시 연습하기 시작  곡은 JS Bach 이탈리안 콘체르토. 다음에  콘서트를 하게 되면  곡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이렇게 즐겁게 한곡 한곡 연습해가는 것이 너무 기쁘다.

 

노르웨이에 와서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며 느낀것이 이런 모든 것이 여기가 노르웨이의 작은 도시라 가능한 것이구나 싶다. 너무 비싸지 않은 가격에 나름 잘나가는 피아니스트인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을  있는  하며, 이런 멋진 콘서트장에서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연주를   있는  하며... 한국이나 미국이었으면 가능했을까. 잘은 모르지만 예체능으로 대학에 들어가려면 유명한 선생님에게 수십만원 수백만원의 레슨비를 내가며 레슨을 받아야 하지 않나. 마이를 소개받기 전에 다른 어떤분께서 자기 아이들이 레슨을 받고있는 선생님을 소개해준다고 하셨는데  선생님은 베르겐 출신의 유명한 작곡가 (하랄 사바루라는 작곡가) 아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80 다되신 선생님이 너무 엄격하셔서 연습을 열심히 안하는 학생들은 새벽 여섯시에 레슨을 잡아주고 연습을 열심히 할수록 시간을 늦춰준다고 하여 거절했다 ㅋㅋㅋ 피아노가 아무리 좋아도 새벽 여섯시엔 그냥 잠을 자는게 낫겠다. 거절 하기는 했지만 여기가 베르겐이니 이렇게 유명한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을  있는 기회가 있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아이가 없으니 노르웨이에서 아이들을 예체능 시키는것이 어떤지  모른다. 여기에는 정말 집이 엄청 잘살지 않아도 동등한 기회가 있을까. 집의 기둥뿌리 뽑지 않아도 예체능을   있을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기회는 매우 많다는 . 열심히만 한다면 말이다.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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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멋지십니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악기하나쯤은 다뤘으면, 혹은 그림을 그렸으면..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거든요.^^

    • ㅎㅎㅎ 어린시절 엄마가 잔소리잔소리 하시며 시키시던 것들 (피아노학원, 미술학원, 운동 등등)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지금 삶이 좀 더 풍요로워졌을지도 모르는데 그땐 왜 그렇게 하기가 싫었던건지 모르겠네요. 악기야 나이 들어서 배우면 좀 어렵지만 그래도 그림은 지금이라도 할 수 있지 않나요? 저도 저번학기에 친구 따라서 유화 수업을 들었는데 다들 아줌마 아저씨들이던대요. 그렇다고 어렸을때도 못그리던 그림이 어른이 되었다고 잘그려지는건 아니더라구요 ㅋㅋㅋ

베르겐에는 2년에 한번씩 그리그의 이름을  피아노 콩쿠르가 열린다. 나는 피아노에  관심이 많지만 그리그 콩쿠르는 베르겐에 오기 전에는 들어본적이 없어 매우 작은 콩쿠르인줄 알았는데 올해로 벌써 15회를 맞았다고 한다. 원래  콩쿠르는 오슬로에서 열렸는데 몇회전부터 베르겐에 있는 그리그 생가에서 주최하고 있다. 나는 언젠가  한번 피아노 콩쿠르를 관람하고 싶었는데 베르겐에 오면서 나의 바램이 이루어졌다. 예전에 미국에 살때 반클라이번 콩쿠르를 관람하러 가려고 알아본적이 있었는데 그런  콩쿠르는 관람하는 사람들도 꽤나  돈을 내야하는 것에 놀랐다. 그리그 콩쿠르는 나름 관람객에 친절한 콩쿠르인지라 결승을 제외한 그리그 생가에서 열리는 모든 프로그램을 무료로 공개하고 모든 콩쿠르 실황을 라이브로 중계한다. 매우 공정하고 투명한 콩쿠르가 되기 위해 심지어는 심사위원의 채점표까지 공개를 한다고 한다. 요즘은 아주 작은 콩쿠르가 아닌 다음에는 많이들 이렇게 하는  같다.



이런 기대감에 2 전에 열린 그리그 콩쿠르 때에는 몇번 그리그 생가에 콩쿠르를 구경하러 갔더랬다.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공짜로 양질의 연주를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그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는데 항상 이런델 가면 사람들이 날더러 너는 언제 치냐 이렇게 물어본다. ㅎㅎㅎ 나는 그냥 관람객일뿐인데도 젊은 동양인 여자가 거기서 왔다갔다 하면 으레  사람은 콩쿠르 참가자겠거니 하고 생각들을 하는 것이었다. ㅋㅋㅋ 그런데 그때 콩쿠르에서 만나 알게  분들이 추천을 해주셔서 이번 그리그 콩쿠르에는 호스트 페밀리가 되기로 했다.

 

그리그 콩쿠르는 왠지 한국인 참가자가 별로 없는것이  안타까운데 개인적으로 매우 추천해주고 싶은 콩쿠르이다. 규모가 작긴 해도 콩쿠르를 운영하시는 분들 말에 따르면 참가자가 와서 돈만 많이 쓰고 기껏 15 연주하고 1차에서 떨어지면 집에 가는 그런 콩쿠르가 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런 그리그 콩쿠르의 운영철학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일단 예선에서 합격해서 30 안에 들면 베르겐에 초대받게 되는데 베르겐에 오기만 해도 참가비로 내야했던 500유로를 되돌려줄  아니라 호스트 페밀리를 연결해줘서 숙식을 무료로 받도록 해준다. 콩쿠르의 특성상 참가자 30  12명만이 2차에 가게 되어있다. 그렇지만  1차에서 떨어지더라도 베르겐 여기저기에서 공연을   있는 기회를 준다. 공연을 하기만하면 500유로를 준다고 하니 아주 멀리에서 오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행 경비까지 대주는 샘이 된다. 준결승까지 가게되면 1500유로를 받게 된고 결승까지 가게 되면 3등은 1만유로, 2등은 2만유로, 1등은 3만유로에 음반을   있는 기회, 여기저기에서 협연이나 콘서트를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고 하니 매우 작은 콩쿠르인데 비해 상당히 얻는 것이 많은거라고 한다.

 

이번엔 호스트 페밀리가 되었으니 우리 부부에겐 매우 특별하고 개인적인 콩쿠르가 되어버렸다. 사실 호스트 페밀리를 주관하시는 분께 한참동안 연락이 없어서 우리는 호스트 페밀리에서 선택되지 않은게 아닌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그리그 콩쿠르 홈페이지를 보니 참가자 명단이 떴는데 거기 한국인 참가자분이 한분 계신게 아닌가! 나름 매우 반가워서 우리가 한국인 참가자분의 호스트 페밀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호스트 페밀리를 주관하시는 분께 연락이 와서 한국인 참가자분이 사실은 독일에서 오래 생활하신 분이라 한국인-독일인 커플인 우리에게  맞을  같다며 그리그 콩쿠르의 한국인 참가자 안아름씨를 추천해줬다. 호스트 페밀리로서  그리 크게 해줄수 있는 것은 없지만 같은 한국 사람으로 언니같이 밥이라도 한끼 정성스레 한국 음식을 해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열심히 호스트 페밀리 역할을 하고 있는 더스티. 더스티는 '귀여움'을 담당하고 있다. ㅋㅋㅋ


호스트 페밀리를 하겠다고 자원을 하기는 했지만 막상 진짜로 호스트 페밀리가 되고나니 걱정이 앞섰다. 너무 까다롭고 예민하신분이 오면 어떡하나. 더스티를 싫어하면 어떡하나. 채식주의자이면 어떡하나. 우리랑  안맞으면 어떡하나. 등등 ㅎㅎㅎ 그런데 콩쿠르 시작 전날 그리그 생가에서 처음으로 만나게된 아름씨는 우리의 걱정과 달리 너무 순박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ㅎㅎ 프로필 사진에 나온 조금 센언니같은 모습은 정말 어디에도 없었고 (아름씨는 사진이  안받는 스타일인것 같다. 실물로 보니 훨씬  예쁘던데 ㅎㅎㅎ) ‘오늘 저녁은 제육볶음이라는 말에 물개 박수를 치는 귀여운 모습에 나와 파파는 아름씨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ㅋㅋ 사실 콩쿠르는 18세에서 33세까지로 나이 제한이 있어 여러 연령대의 참가자가 오는데 아름씨는 참가자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참가자여서 우리와도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재미있었던  같다. 때마침 베르겐에서 열린 맥주 페스티벌에 함께 가기도 하고 말이다 ㅋㅋㅋ

 

우리는 아름씨가 오기 전에는 아름씨가 어느정도 수준의 피아니스트인줄 몰랐다. 그래서 1차나 2차에서 떨어지면 그냥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름씨는 15 그리그 피아노 콩쿠르의 우승자가 되어버렸다. ㅎㅎㅎ 1차에서 합격하고 2차에서 준결승으로 진출하고 결승까지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매우 일이 바쁜 와중에서도 매번 아름씨의 연주를 보러 그리그 생가에 가게 되었고 가서는 아름씨를 열심히 응원했다. 우리 부부는 마치 어린 딸아이를 콩쿠르에 내보낸 극성스러운 부모처럼 아름씨를 졸졸 따라다녔다. 다행히도 아름씨는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응원해준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하더라. 매번 연주가 끝나고 다음회차로 가는 합격자를 발표할때 마음 졸였던 순간, 그리고 우승을 했을때 너무나 자랑스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사실 아름씨는 우리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 그냥 친한 동생 정도의 느낌이었지만 아름씨의 호스트 페밀리가 되면서 우리는 새삼 자식이 있다는게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아름씨에게 밥해주고 응원해준것 밖에 별로 한게 없는데 우리는 콩쿠르 주최측에서 많은 칭찬을 받았다. ㅎㅎㅎ 아름씨가 우승을 해서 그런것도 있지만 호스트 페밀리 자원봉사를  사람들중에 우리만큼 젊은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할머니 할아버지같은 분들만 이런데 참여를 하시는데 우리같이 참가자들과 비슷한 나이의 호스트 페밀리가 참가자들을 언니 오빠 누나 형같이 대해주는것도 좋지 않나 싶다. ㅎㅎㅎ



결승에 진출하는 세명의 참가자중 아름씨 이름이 불리는 순간 (그리그 콩쿠르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 옆에서 좋아하는 두명이 바로 나와 파파. 아름씨는 준결승 연주가 끝나고 자신은 결승에 가지 못할거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처음으로 아름씨 연주를 들었을  우리는 음악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지 않았지만 매우 성숙한 연주를 하는 아름씨가 우승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계속 다음 단계로 나아가면서 우리 역시 다른 참가자들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고 심사위원들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으며 채점 시스템에 대해서도 공부를  콩쿠르가 끝날 무렵에는 거의 피아노 콩쿠르의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름씨가 우승할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매번 아름씨가    있을거라고 격려를 해줬다. 나는 원래부터도 피아노 음악에 관심이 많았으니 콩쿠르를 관람하는 것이 재미가 있었는데 사실은 음악에 크게 관심이 없는 파파는 콩쿠르가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파파는 아름씨를 따라 콩쿠르를 보러다니는 것이 마치 월드컵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같았다며 너무나 재미있었다고 한다. 남자들은 어느 종목이던간에 이기고 지는 그런 시나리오가 있으면 재미있나보다. ㅋㅋㅋ 그리그홀에서 열린 결승날 아름씨는 마치 클라라 슈만이 빙의된 듯한 실력으로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고 우승은 물론 상금 1천유로의 청중상까지 받게 되었다. 어찌나 감동적이었나 모르겠다. 파파는 콩쿠르가 끝나고 아름씨의 연주를 네다섯번이나 돌려서 봤다며  비디오를  소장해야겠다고 한다 ㅎㅎㅎ

 

우승자가 되면서 아름씨는 피아니스트로서 여러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콩쿠르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이게 좋기도 하지만 별로 안좋기도 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승자에게만 매우 열광하는 이런 모습. 이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아름씨가 우승을 하게 되니 너도나도 와서 아름씨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렇고 2등과 3등을  피아니스트에게는 아무런 스포트라이트가 가지 않는 그런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도 아름씨는 이미 매우 성숙한 연주자여서 이런것을 모르는게 아니라고 하더라.  1-2년은 여러 기회가 있는데 2년이 지나면 콩쿠르에는 새로운 우승자가 나오게  것이고 그러면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새로운 우승자에게 가게 된다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 역시 매우 상업적인 것이어서 뭔가 장사가 잘될만한 매우 특징적인 캐릭터가 없으면 공연을   있는 기회를 얻기가 힘들다는게 아름씨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라  안타깝다.

 

그래도 일단은 아름씨는 내년에는 베르겐을 비롯한 노르웨이의 여러 도시에서 공연을 하게 되어 우리를 설레게 했다. ㅎㅎ 내년에 베르겐에 놀러오면  같이 낚시를 하러 가고 싶다는 아름씨. 내년에 오면  어떤 맛있는 요리를 해줄까 ㅋㅋㅋ 나도 매우 신이 난다.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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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겐의 여름은 문화의 천국이다. 여러가지 페스티벌이 열리고 매우 많은 콘서트가 열린다. 물론 매우 많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이곳에서 여름에 벌어지는 일들은 다른 여러 대도시에 비할바 못하지만 베르겐이 춘천보다도 작은 도시임을 감안하면 이렇게 작은 도시에서 이정도 양질의 문화행사가 열린다는 것이  대단한것 같다. 가격도 그리 많이 비싸지 않아서 누구의 콘서트가 열리던 가격은 우리 돈으로 6-8만원정도이고 거의 대부분의 경우 야외콘서트여서 좌석 지정같은게 없어 마음만 먹으면 8만원 내고  멕카트니를  앞줄에서 볼수도 있다. 게다가 도시가 작다보니 어느 콘서트건 집에서 걸어서   있다는게 대체 얼마나 멋진가.

 

 여름엔 집에 붙어있는 시간이 나름 많아서 여러 콘서트를   있었다.

 

여름의 시작으로 가장 먼저 5월에 가게된 콘서트는 노르웨이의 전설적인 보이밴드 아하(A-Ha) 콘서트이다. 80년대 매우 유명했던 Take On Me라는 노래와 주인공들이 만화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센세이셔널한 뮤직비디오로 유명해진 아하. 나는 노르웨이에 오기 전까진 아하가 미국 밴드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하는 노르웨이의 국민적 영웅에 가깝다. ㅎㅎㅎ 이들은  노래 하나만 히트하고 활동을 접은것 같았지만 그들은 80년대중반부터 30년이지난 아직까지도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사실 팝을 거의 듣지 않는  귀에도 살짝 익숙한 노래들도 많더라. 아하 콘서트는 야외무대에서 열렸는데 거의 표가 매진된것은 물론 마지막 피날레로 히트곡 Take On Me 부르고  뒤에는 전례없는 불꽃놀이 쇼가 펼쳐졌다. 거의 왕과 비슷한 대접을 받는것 같다. ㅎㅎㅎ 콘서트에 같이  러시아 친구의 말에 따르면 아하는 러시아에서도 정말 유명하다고 한다. 러시아에서는 미국의 팝을 거의 못듣게 했는데 아하는 노르웨이 가수여서 매우 유명했다며 하는 말이 아하의 리드싱어는 아직도 정말 너무 잘생겼어~!’ ㅎㅎㅎ




5 말에서 6 초에는 Nattjazz라는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저녁 8시부터 시작해서 밤에 열리는 재즈콘서트이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은 2 내내 밤마다 콘서트를 가기도 하던데 이제 늙고 지친 우리들은 하룻밤 가서 구경하는 것도  힘들었다. ㅎㅎㅎ 파파는 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여지껏  페스티벌엔 몇번 가지 않았는데 이번엔  릿나우어(Lee Ritenour)라고 예전에 자주 들었던 재즈 기타리스트가 마침  생일날 공연을 한다고 해서 친구들을 불러모아 생일 파티겸 콘서트엘 갔다.  생일 특별 공연으로  릿나우어가 오다니 ㅎㅎㅎ 낫재즈 페스티벌엔 한번에 네다섯 공연이 열리는데  릿나우어 공연을 보러 간거지만 다른 밴드도 구경할  있어  좋은것 같다. 그중에서도 사라 맥켄지라고 호주 출신의 여가수의 공연이 정말 좋았다.  릿나우어씨는  마지막에 등장하셨는데 이번엔 20 초반의 아들을 드러머로 데리고 공연을 했다. 그의 음악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비슷하지만 그래도 최고의 뮤지션들을 모아 라이브를 하니 음반으로 듣는것보다 정말 훨씬 좋더라.

 


7월말엔 파파에게 깜짝 선물로  모리슨 (Van Morrison) 콘서트 티켓을 샀다. 정말 굉장하다.  모리슨이 여기까지 오다니.  모리슨은 올해초 기사 작위를 받아  모리슨경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 벌써 70 넘으셨다는데 왠지 거동이  불편해보이시더라. 우리는 대체  모습이 그가 어디가 아프셔서 그런건지, 아니면 뭔가에 잔뜩 취하셔서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모습인지 알수 없었다. 게다가  명성에 걸맞게 엄청 까다로우신지  두시간정도 진행된 콘서트 내내 그의 어시스턴트는 물이면 , 커피면 커피, 조명, 음향 등등을 그의 구미에 맞추느라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는 모습을 볼수가 있었다. 게다가 그가 퇴장할때는 어시스턴트가 그가 가는 길을 조명으로 비추면서 따라나가는데 ㅎㅎㅎ 현대판 하인인가 ㅋㅋㅋ 하여간 그의 노래는 변함없이 매우 좋았다. 보통 가수들이 노래 몇곡을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하는 반면  모리슨 콘서트는 두시간 내내 히트 매들리처럼 그냥 끊임없이 노래만 이어져  신기했다. 하여간 전설적인  모리슨을 이렇게 가깝게 만날  있다니 정말 최고였다. 예외없이 야외에서 열린 콘서트 막바지에는 비가 미친듯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우리야 이런게 익숙해서 다들 비옷을 입고 왔지만  모리슨의 밴드는 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열심히 호흥해주는 우리가 신기했는지 마지막 인사를 하며 청중 사진을 찍더라.



콘서트 다음날 베르겐 신문에 실린 사진. 나는 여기서 왠지 파파를 찾아냈다 ㅋㅋㅋ

 

8월엔 오로라(Aurora)라는 베르겐 출신 신인 여가수의 콘서트에 갔는데 이쯤에서 파파는 콘서트가는게  지겨워지기 시작했는지 약간 귀찮은 기색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ㅎㅎㅎ 마누라 덕에 이런 문화생활도 하면 좋지  그런걸로 귀찮아하는가. 하여간 오로라는 이제  스무살이  가수인데 베르겐 출신의 여고생 가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여 요즘은 세계적으로 정말 뜨고 있는 가수라고 한다. 작년 여름엔가 케이티 페리가 자신의 트위터에 언급을 하면서 미국에서도 많이 알려져 미국에서 놀러온  친구는 오로라 콘서트에 엄청 가고싶어했는데 시간이 안맞아 아쉽게도 못가게 되었다. 그의 음악은 마치 초창기 아이슬란드 가수 비요르크를 연상시키는 특이한 북유럽풍의 팝이다. 정말 신비롭고 특이한데 어린 나이의 가수가 이런 음악을 직접 만들어 공연을 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콘서트에 가보니 깊이있는 음악과는 달리 너무나 깜찍하고 귀여운 여대생이 무대를 뛰어다니며 노래를 하는게 아닌가. 엄청 파워풀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노래를 할때와는 달리 중간중간 무대 인사를 할때 오로라는 마치 처음 무대에  꼬마처럼  수줍은 모습을 보이며 ‘저 보러 이렇게 많이 와주시다니~~’ 이런 말을 하기도 하고 중간중간 자기 엄마아빠와 친구들을 찾으며 엄마~  보여요?’ 이러며 손을 흔들기도 했다. 이런 깜찍한 모습에 파파와 나는 완전 반하고 말았다. ㅎㅎㅎ

 


이제 여름은  갔지만 10월엔 블로그 이웃분을 통해 알게된 노르웨이의 가수 베른호프트 (Bernhoft)라는 가수의 공연에  예정이다. 사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노르웨이 가수는 실리예 네르고르 (Silje Nergaard)라는 재즈가수인데 그녀는 한국에서도 종종 콘서트를 한다고 한다. 이제 너무 유명해져서 주로 해외 공연을 하고 베르겐엔  안오는지 작년인가 제작년인가에 베르겐에서 콘서트를 한적이 있었는데 그땐 출장중이라 가지 못한게  안타깝다


 재미있었던 것은 6월에 내가 출장을 갔다가 오슬로에서 베르겐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내가  비행기에 그주에 베르겐페스트에 참가하는 뮤지션들이 대거 타고있었던 것이다.  알지 못하는 헤비메탈 밴드가 여럿 타고 있었는데 나를 둘러싸고  뒷자리 앞자리에 줄줄이 앉으셨더랬다. 그땐 그냥 페스티벌 참가하는 뮤지션들이겠거니 했는데 언젠가 레코드 가게에 갔다가 그들 얼굴이 찍혀있는 앨범을 보게되니  우습더라. 담배냄새 풀풀 풍기며 헤비메탈스러운 반항적인 애티튜드를 물씬 풍기던 아재들이 그들이었다니 ㅋㅋㅋ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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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 6월은 정말 너무 바빴다. 5  어느날 미친듯이 달려가던 일이 마감되었는데 마침 날씨가 너무 좋아서 파파에게 우리 캠핑이나 갈까?’ 했다. 급하게 가기로 한거라 그냥 이동네에 있는 산으로 짐을 싸서 이틀정도 산을 타며 캠핑을 하면 좋을것 같아 버스를 타고   있는 코스로 찾아봤는데 항상 베르겐 시내에서만 등산을 하니 이번엔 베르겐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으로 한번 가보기로 했다. 마침 친구 한명이 자기도 가고 싶다고 해서 우리 셋과 더스티 이렇게 넷이 함께 2 3 캠핑을 떠나게 되었다.

 

베르겐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Totland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부터 시작해서 Gullfjell이라고  근방에서 가장 높은 산꼭데기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코스로 짰는데  20km정도이니 3일에 걸쳐 걸으면 쉬엄쉬엄   있을  같아 마음에 들었다. 맨날 차타고 다니는 캠핑을 하다가 배낭여행을 하려니 대체  싸야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불편하지 않을까  고민이 많이 되더라 ㅠㅡㅠ 캠핑이라는게  그렇다. 일단 없어서는 안되는 텐트, 침낭, 매트, 조리기구 이런것들이 가장 무거운 것이다보니 하룻밤을 갔다오던 닷세를 갔다오던 짐의 무게가 거의 비슷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오랜만에 짊어진 배낭은 엄청나게 무거웠다.

 

버스를 타고 베르겐 시내를 지나 근처 Nesttun이라는 시를 지나  한참을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가니 Totland종점에 도착했다. 우리가 등산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6시가 거의  된지라 이미 당일 등산객들은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이었고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었다.

 

첫날은 그냥 가장 처음 나오는 산꼭데기까지만 가서 거기서 저녁을 해먹고 잠을 자기로 했다. 거리는 고작 5km정도에 300m정도를 올라가는 코스였는데 고작 그정도야...라고 생각했으나 20kg 넘는 가방을 메니 정말 말도 안되게 힘들었다. 엄청 가파른 22km 트롤퉁가를 8시간만에 해낸 우리들이었는데 말이다! 이렇게 얼마 안되는 거리를 가는데 세시간이 걸렸고 정상에 도착하니 배도 고프고 정말 힘들었다. 게다가 완전히 어두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해질녁이 되니 바람도 많이 불고 엄청 춥더라. 낮에 반팔을 입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것과는 정말 달랐다. 내가 이걸  가져가나 싶었지만 오리털 자켓을 챙기기를 천만 다행이지 ㅎㅎㅎ 산위에서의 날씨는 정말   없는 것이다.





 

산위에서 꿀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새벽 여섯시 정도 였는데 날씨가 정말 화창하게 맑았다. 새벽부터 어찌나 밝은지 너무 아름다웠는데  멀리서 뻐꾸기 소리가 들려왔다.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여덟시 정도 드디어 텐트밖으로 나왔는데 나와보니 아까와는 다르게 구름이 조금씩 끼기 시작하는 것이 왠지 불안했다. 그때 아차하며  생각이 떠날때 날씨가 너무 좋아서 주말 날씨 확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산위에서의 날씨는  도심의 날씨와 다르게 빠르게 변하지 않나. 대충 아침을 먹고 급히 짐을 꾸려 가던길을 떠났다.







열심히 걷기는 했는데 생각과 다르게 경로는 짧은 거리에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해야하는 코스였다. 엄청 무거운 가방을 지고 300미터를 올라갔다가 다시 300미터를 내려왔다가를 계속 반복하다보니 생각보다 정말 많이 힘들었다. 게다가 구름은 걷힐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어느샌가 비구름이 몰려오더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가는 비일거야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비는 더더욱 거세게 내리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비옷은 챙겨왔지만 비가 올거란 예상은 전혀 하지 않았던터라 가방 덮개를 가져오지 않았는데 가방이 젖기 시작했다. 가방이 젖는거야 별로 상관이 없지만 침낭이 젖어버리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날씨도 추워지기 시작했다. 비옷을 입어 비를 직접 맞지는 않았지만 계속 걸어야하니 땀이 나면서 비옷 안으로 옷이 젖으니  엄청 추워진다. 이런 날씨에는 비싼 고어텍스를 입던 싸구려 고무 제품을 입던 결과는  똑같다. ㅠㅡㅠ

 

비가 오면서 안개가 끼기 시작하더니 정말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산길은 표지판이  되어있지 않아 여기가 어딘지 정말  모르겠더라. 이렇게 겨우겨우 도착한 곳은 우리같은 사람들은 위한 비상 오둑막집이었다. 지도에도 나와있긴 해서 다행히  찾긴 했는데 따뜻한 커피라도 얻어마실  있을까 하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운영을 하지 않고 있었고 오두막 안에는 비를 피해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우리는 더스티가 있어 들어갈  없었다. 우리는 따뜻한 뭐라도 마시고 옷도  갈아입고 하면   추워지겠지 싶어서 오두막집 처마 끝자락에 쪼그리고 앉아 라면을 끓여먹기로 했다. ㅎㅎㅎ 매콤한 우리 라면은 이런 상황에 정말 최고다!

 

지도상으로는  비상 오두막이 우리 여정의 절반정도인 곳이었다. 그리고 이론상으로는  오두막집에서 원래 우리가 가려고 했던 Gullfjell 정상이 보여야하는데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아무래도 여기서 딴길로 빠져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 길도  모르는데 안개까지 이렇게 끼어있으면 엄청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날 우리는 Gullfjell정상에서 캠핑을 하려고 했었는데 오두막에서 만난 사람의 말로는 거긴 아직도 눈이 쌓여있다고 하는게 아닌가. 정말 낭패다.

 

우리 셋은 자존심 싸움을 하며 누가 먼저 그냥 집에 가자는 말을 해줬으면 하고 있었는데 내가 가장 먼저 집에 가자고 했다 ㅎㅎㅎ 나중에 산을  내려와서 같이  친구가 하는 말이 지금은 날씨가 그렇게 안좋지는 않지만 집에 가고자 하는  마음은 아직도 변함이 없어라고 하더라 ㅋㅋㅋ

 

그렇게 산을 내려오긴 내려 왔는데   난관에 부딛쳤다. 어디서 어떻게 버스를 타야하는지를 몰랐던 것이다. Gullfjell에서 내려와서 버스타는 것만 생각해서  버스 스케줄만 알아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셋다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들인지라  대책이 없었다. 지도를 보며 대충 마을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스케줄을 확인하니 버스는 월요일에서 금요일밖에 운행을 안하는 것으로 되어있었고...대체 무슨 버스가 이런가 싶었는데 나중에 동료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버스는 작은 마을에 사는 학생들을 위한 스쿨버스라고 하더라 ㅋㅋㅋ  정처없이 걸어서 걸어서 대충 버스가 설만한 마을로 갔더니  버스는 없었다. ㅠㅡㅠ 아니 대체 이런 시골 마을 사람들은 주말에 차가 없으면 어떻게 돌아다니라는거냔 말이다! 이렇게 시골산길을 정처없이 걸어 드디어 버스가 서는 곳을 찾았더니 아스팔트길만 10km 걸었더라. 이럴거면 Gullfjell까지 갔어도 되는거 아닌가 싶었다.  등산화를 신고 아스팔트 길을 걸으니 정말 발이 아팠다. 그래도 버스 정거장  작은 구멍가게에서 사먹은 아이스크림은 정말이지 꿀맛이었다 ㅎㅎㅎ

 

이렇게 꾸역꾸역 집에 도착하니 정말 살것 같았는데 집에 도착하니 산에서와는 달리 날씨가 화창했다. (,.)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시간이었는데...다음번엔 준비를 조금  해서 가면 괜찮으려나 ㅎㅎㅎ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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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베르겐은 날씨가 정말 말도 안되게 이상했다. 맑은 봄날씨였다가 우박이 미친듯이 왔다가 비가 왔다가 눈이 왔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밤에 눈이 꽤 많이 왔는지 이런 모습이더라. 게다가 오늘은 하루종일 눈이 오고 있다. 봄이오고 여름이 오려나 했는데 눈이라니 ㅠㅡㅠ



봄은 대체 언제 오려는건가. 작년처럼 겨울에서 바로 가을이 되지나 말았으면.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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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몇번 동료들이 추천해주신대로 노르웨이 사람들처럼 스키를 타고나니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스키란 무엇인지 알수 있을  같았다.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스키 스포츠, 운동, 레크리에이션의 의미보다는 단지 밖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중 하나였다. 기나긴 겨울 집에서만 있지 않고 바깥공기를 마시기 위한 도구로 스키는 그냥 삶의  부분이었다. 그러니 비가와도 밖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스키를 타는 것이 아니겠나. 사실 밖에 비가와도 아주 비가 많이 오지 않는한 스키를 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보면 몸에서 열이 나서 더워지고 비를 맞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더라. 그저 밖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남편과 더스티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

 

이렇게 스키가 일상이 되어있어서 그런지 물가가 매우 비싼 노르웨이에서도 스키는 마음만 먹으면 정말 매우 싸게 구입할  있더라. 얼마전 세일을 하는데 봤더니  괜찮은 브랜드 스키 세트를 부츠, 스키, 바인딩 모두 합쳐서 우리돈으로 15만원도 안되는 가격(999Kr 였음 ,.) 팔고 있었다! 너무 싸서 우리는 스키가 몇벌 있음에도  살뻔했다 ㅋㅋㅋ 게다가 스키를 타기위한 스키트레일은 정부차원에서 유지되고 있어 공짜임으로 아무리 돈이 없는 사람이어도 스키를 즐길  있다. (크로스컨트리 스키가 그렇다는 것이고 알파인 스키의 경우 리프트권을 사려면  비싸고 내가 가본 다른나라의 스키장들보다 별로다.) 그렇다보니 노르웨이 사람들은 정말 어렸을때부터 스키를 타기 시작한다. 동료들을 보니 두살짜리 애기를 데리고 스키를 타더라. 아이들이 걷기 시작할때부터 스키를 태운다는 뜻이다. 눈이 별로 많이 안오는 베르겐에 사는 사람들도 이정도이니 눈이 많이 오는 다른 지방은 아마도  심할거다. 그렇다고 노르웨이  국민이 올림픽 선수들처럼 스킬있게 스키를 타는것은 아닌것 같은데 그저 국민의 대부분이 스키를 탄다는 것이 특징인것 같다.

 

 이렇게 오두막에 가서 몇일동안 스키를 타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족들과 쉬며 휴일을 즐기는 핑계가 아닌가 싶더라. 티비도 인터넷도 없는 크밤스쿠겐 오두막에서 우리는 아침에 늦게 일어나 한시간 넘게 아침을 먹고 쉬엄쉬엄 나가 몇시간 스키를 타고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낮잠을 자고...다시 잠깐 나갔다가 들어와서 보드 게임을 하고...그리고 저녁을 먹고...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도 한잔 하다가 다시 게임을 하고...그러다가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엔 늦잠을 자고...이러기를 이틀 하니 스트레스와 피로가  풀리더라. 이런 오두막에선 어찌나 잠이  오는지...그리고 어찌나  잘수가 있는지... 집에서는 아무리 아무리 잘래도 그렇게  잘수가 없는데 말이다. 이렇게 스키타기와 쉬는걸 동시에   있다니...이런게 바로 노르웨이식 스키타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겨울은 이제  지나가고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벌써 다음 겨울이 기대된다. 다음 겨울에는 어디서  즐거운 스키타기를 할것인가 ㅎㅎㅎ 오는 겨울엔 시댁 식구들이 계신 독일의 흑림에 한번 도전해볼까나 ㅋㅋㅋ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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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성공적으로 스키를 타러 갔다 오고나니 자신감이 부쩍 늘어 우리는 겨울이 지나가기 전에  한번 오두막을 빌려 스키를 타러 가기로 했다. 동료분이 알려주신 곳들 중에 베르겐에서 가까운 Kvamskogen(크밤스쿠겐) 봤더니 캠핑장이 있었는데 (NAF Kro & Camping Kvamskogen) 우연히 빈자리가 있다길래잽싸게 예약을 하고...

 

크밤스쿠겐은 베르겐에서 한시간정도밖에 안걸리는데 그래서 베르겐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크밤스쿠겐의 오두막은 전에 갔던 뮈르크달렌의 오두막보다 많이 비쌌다. 하룻밤에500Kr였는데 두사람만이   있는 오두막이었고 시설도 예전에 갔던 곳보다 오래된듯 했다. 그래도 우리 두사람과 더스티님이 주말을 보내기엔 완벽했다!




 

최근 일때문에 매우 지쳐있던 우리는 오두막에서 스키를 타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다가 오기로 했다.친구들과 함께 스키를 타러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렇게 우리 가족끼리만 가서  쉬다오는 것도 좋지 않은가 ㅎㅎㅎ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크밤스쿠겐은 상대적으로 고도가 낮은 곳이어서 그런지 눈이 상당히 많이 녹아있었고 금요일 저녁때 도착해서 한바퀴  돌아보니 눈이 많이 녹아서 미끄러웠다. 조금  일찍 알고 1월쯤 왔으면  좋았을것을...

 

그래도 캠핑장은 정말 위치가 좋아서 캠핑장에서 스키를 신고 바로 스키를 타러 갈수가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몇시간이고 스키를   있도록 경로가 정말 다양했다. 지도를 보니 어떤 트레일은 매일, 어떤곳은 일주일에 한번 스키트렉을 정비한다고 한다니... 대단하다. 그리고 정말정말 작았지만알파인 스키를 위한 스키리프트도 있었는데 ㅋㅋㅋ 아마 나같으면 돈내고 여기서 스키를 타지 않을것 같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스키를 타고 있었다 ㅎㅎ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났는데 밖을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 스키를 타러 왔는데 비라니...ㅠㅡㅠ 그런데 잠깐 밖에 나가서 보니 비가 오는데도 사람들이 스키를 타고 있었다. 우리는 비오는데도 스키를 탔다 해보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일단 밖에 나가니 그리 나쁘지 않더라. 비록 안경이  젖어서 앞이  안보이기는 했지만 ㅎㅎㅎ

 




 다음날엔 비가 조금 덜와서 전날 갔던  반대방향으로 가봤다. 길을 건너 반대방향으로 가니 향이 달라 그런지 눈이 훨씬 많아 스키타기가 굉장히 좋았다. 그리고 경치는  얼마나 아름다운지...이런곳에서온가족이 와서 스키를 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크로스컨트리 스키 트레일은 등산로와 거의 비슷해서 견공님들도 환영이다보니 더더욱 즐거운 시간이 되는것이다.







크밤스쿠겐에서 스키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올해 스키 시즌을 마감했다. 이렇게 몇번 주말에 오두막을 빌려 스키를 타니  겨울엔 스키를 열심히   같아 뿌듯했다. 내년에도 아마 이렇게 겨울을 보내면 되겠구나...이제야 조금 감이 온다. ㅎㅎㅎ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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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직장에서 조금 일찍 빠져나와 짐을 싸고 스키를 타러 갔다. 뮈르크달렌은 베르겐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