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We should all be feminists’라는 짧은 책을 읽었다. 한국에도 이 글이 책으로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이 책은 책이라고 하기 좀 그럴 정도로 짧은 에세이다. 50페이지 정도 되는데 아디치에가 TEDx에서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출간한 것이라고 하더라. 나는 아디치에의 소설은 읽어본적이 없으나 그녀의 인터뷰를 여러번 들은적이 있고 또 그가 쓴 단편들을 몇번 읽어 본적이 있다. 소설은 어떤지 몰라도 아디치에의 글쓰기는 매우 간결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불편한 부분들 콕 집어낸다는 것이 마음에 들더라. 그런면에서 We should all be feminists도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이 글에서 아디치에는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항상 세상에 화가 나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하이힐을 신으면 안되는 것도 아니고 립스틱을 바르면 안되는 것도 아니며 남자를 싫어해야하는 것도 아닌 단순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지껏 관습이 그래왔기에 모든 중요한 일들을 남성이 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여성은 집에서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보는 것이 미덕이었다면 관습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에 시대에 맞추어 관습을 바꾸어야한다고 말한다.


미투운동 등으로 부각되고 있는 성차별은 전세계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나 역시 이런 문제는 나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요즘들어 차별은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한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곤 한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교육수준이 매우 높은 사람들과 어울리는데다가 심지어는 차별이 크지 않다는 노르웨이에 살고 있음에도 이런 생각이 드니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환경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온 얼마 뒤 이웃에 사는 어떤 할아버지가 나의 시아버지를 가리키며 저사람이 너의 남편이나고 물어본적이 있다. 그래서 저사람의 아들이 내 남편이라고 말을 해줬는데 아마도 내 남편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남자들은 평생가도 한번 그런 말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나 나는 이런 질문을 한번만 받은 것은 아니다 (아주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도). 단지 내가 젊은 동양여자이기에 돈때문에 늙은 남자와 결혼을 했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외국에 살면서 호칭때문에 기분이 상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서양에서는 결혼을 하면 남편 성을 따서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고 부부의 성을 하이픈으로 연결해 사용하는 경우도 꽤 많으며 아주 간혹 남자가 여자의 성을 따라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봤다. 나는 박사학위를 받고 여러 활동을 하면서 항상 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 왔기 때문에 남편 성을 따라 바꾸지 않았으며 파파 역시 내가 이름을 바꾸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실재로 아마도 지금 이름을 바꾸면 예전 이름으로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일하는데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종종 나를 Mrs. XXX라고 부르는데 있다. 서양에서는 상대를 존대할때 미스터 혹은 미쎄쓰 이렇게 이름 앞에 호칭을 붙이게 되는 것인데 나는 이게 정말 마음에 안든다. Mrs. XXX는 말 그대로 XXX씨와 결혼한 부인이라는 뜻이 아닌가. 여자의 역할은 그저 누구누구 부인인 것이 가장 훌륭하다는 것인가... 그런데 나는 성을 남편성으로 바꾸지 않았으니 나를 Mrs. XXX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호칭이다. 게다가 나는 내 남편의 부인인것보다 내 자신이고싶은데 말이다. 그래서 가끔가다가 기분이 나쁠때면 나는 Mrs. XXX가 아니니 나를 존칭하려거든 Dr. XXX라고 부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이런식의 반응을 보이면 ‘별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유난떠느냐’라고들 생각할 것이 아닌가.


얼마 전 내년에 또다시 노르웨이 work permit을 경신해야한다는 말을 하는 나에게 한 동료분이 EU배우자 거주권을 신청해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동료분은 캐나다인으로 노르웨이에서 정규직을 가지고 있으나 파트너분이 프랑스인이라서 파트너와 함께 배우자 거주권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Work permit2-3년에 한번씩 경신을 해야하고 할때마다 돈이 좀 깨지는데 배우자 거주권은 5년에 한번만 신청하면 되고 공짜(라고 했던것 같다)라서 그랬다며 나보고도 귀찮으면 배우자 거주권을 신청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그분께서 보내주신 신청서를 한번 읽어봤는데 좀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그 배우자 신청서라는 것에는 꽤 세세한 질문서가 있었는데 대략 질문들이 이렇다. 당신은 누가 시켜서 결혼을 했습니까. 둘 중 누가 청혼을 했습니까. 청혼은 언제 했습니까. 어떤식으로 청혼을 했습니까. 읽다가 너무 화가 나서 대충 읽은지라 자세한 질문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충 왜 이런 질문들이 있는지 알기는 알겠다. 불법적으로 혼인을 빙자하여 유럽국가로 들어오는 사람들 (특히나 여성들)을 막기 위해 이런게 있는것이겠지만 참 우습지 않은가.


나는 박사학위가 있고 노르웨이에서는 정규직을 가지고 있으며 내 남편보다 연봉도 조금 더 높다. 우리 집안에서는 나와 파파 둘이 모두 동등하다. 집안 일 역시 동등하게 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결정도 동등하게 상의해서 내리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부부이며 아마도 우리 둘 사이에 존중과 사랑이 사라졌다고 생각된다면 우리의 결혼 생활 역시 끝이 날 것이다. 결혼하기로 결정한 것은 우리 둘이 함께 상의해서 결정한 것이며 파파가 나에게 프러포즈를 하긴 했으나 결혼반지와 약혼 반지 역시 함께 보석상에 가서 함께 맞추었다. 결혼식 역시 우리가 부부가 되었다는 것을 가족들과 함께 축하하는 의미에서 한 것이지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것 처럼 그 날이 내 생애에서 꿈꾸어오던 가장 행복한 날은 아니었다. 진짜로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것 처럼 많은 여자들이 어린시절부터 결혼식 날을 꿈꾸어오고 그날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고 믿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 주위에는 이런 여자들이 없으며 아마도 이런 미신을 만들어 낸 감독들은 남자들이 아닌가 싶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미투운동을 시작으로 해서 페미니즘이 부흥하고 있다는 것이 참 좋다. 나 역시도 페미니스트이지만 나 역시 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여러방면에서 변질되어 그럴것이다. 굳이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왠지 탈코르셋에 찬성해야하고 하이힐도 신으면 안되고 브라도 벗어던져야하며 빨간 립스틱도 안되고 핑크색은 더더욱 금지이며 항상 ‘모르면 공부해!’ 이런 말을 달고다니며 이런저런 것에 불편함을 끊임없이 드러내야하고 남자를 싫어해야할 것만 같지 않나. 아디치에가 말하는 것처럼 나 역시 페미니즘이란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고 믿는 것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렇고 아마도 공부를 많이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며 남자를 싫어하게 되는 일 역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여러가지 불편한 차별을 몸소 겪으며 왜 페미니스트는 항상 화가 나있는지 알 것 같다. 생각지도 않은 부분에서 차별적인 요소가 너무 많고 이를 하나하나 다 따지다보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나. 하지만 이를 남성혐오로 대처하기보다는 사회적인 규범을 바꾸려는 시도로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말 그대로 페미니즘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동등해지기 위해 ‘남성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의 잘못된 규범과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Dusty Boot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얼마 전 챙겨보는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에 친구의 공식이라는 에피소드가 올라왔다. 참 너무나 많이 공감가는 내용이었는데 그만큼 누구나 어른되어 친구 만들기란 힘든 과제인 것 같다.


에피소드가 궁금하신분은 여기로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er/54200


나는 원래부터가 사람을 많이 가리는 타입이라 친구가 많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서른 중반에 노르웨이로 이사를 오는 바람에 인간관계가 더더욱 좁아졌다. 친구란 무엇일까에 대해 별로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작년 몇가지 충격적인 일이 있어 다시 한번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그럴만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말이다.


우리에게는 종종 만나던 동료 커플이 있었다. 함께 저녁을 해먹기도하고, 공연을 보러간적도 있고, 한학기 취미 유화 수업을 들은적도 있고, 등산을 간적도 있고, 낚시를 간적도 있으며, 몇박몇일로 스키를 타러간적도 있다. 그들은 결혼을 안하고 동거중이었는데 조만간 결혼식을 하려고 하니 꼭 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쯤되면 꽤 친한 친구들이 아닌가 싶었는데 작년 언젠가 안만난지 좀 된것 같아 파파에게 ㅇㅇ씨는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파파가 하는 말이 ‘아 맞다...나도 다른 동료분한테 들은 이야긴데 그사람 고향에 결혼하러 갔대. 그리고 임신 4개월이라고 했대.’ 파파는 별로 아무렇지 않게 그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매우 깜짝 놀랐다. ? 그사람들 우리랑 친구 아니었나? 아무리 그래도 살짝 이메일 한줄이라도 보내주는게 그렇게 어려웠나 싶던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SNS에 소식을 올리긴 올렸다고들 하더라. 그런데 참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었다. 갔다 와서라도 ‘급하게 갔다오느라 연락못해 미안하다.’ 정도의 말이라도 해줄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나 하는건 그저 내 착각이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뭔가 서운한 일이 있었더라면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을텐데...


그런일이 있은 뒤 애써 어색해지지 않으려고 집에 저녁식사 초대까지 했는데도 그 저녁식사 이후로 나는 그들의 소식을 직접 들을 수 없었다. 지금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냥 애낳고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또 그렇더라. 종종 만나던 사람들이 대거 작년에 아이를 낳게 된 것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무리에 끼지 못하고...이렇게 원래 좁던 나의 인간관계는 더더욱 좁아져버렸다.


하여간 이런 몇몇 에피소드로 인하여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인데...이런 고충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아이가 생겼다고해서 사이가 멀어졌다면 그들은 원래 친구가 아니었던게 아니냐는 말들을 하더라. 파파 역시 그런말을 하던데 ‘당신은 그사람들을 친구라고 생각했던거야? 나한테는 그냥 지인이었는데...’ 이런 말을 듣고나니 조금 더 슬퍼졌다. 대체 친구와 지인의 경계는 어디인가 말이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웹툰의 에피소드에서 매우 공감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친구의 공식.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그중 이 세가지를 충족해주는 친구가 살면서 몇 안된다는게 참 믿기 어렵다. 그나마 말 잘 통하고 성격 잘 맞는 베스트 프렌드 남편하나 있는게 다행중 다행인가 ㅎㅎㅎ


웹툰 에피소드에 나온대로 그냥 무던하게 한가지만 마음에 들어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라던지 오는사람 안막고 가는사람 안잡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텐데 ㅎㅎㅎ 아마도 내가 친구가 별로 없는 것은 내가 이런게 잘 안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안맞으면 별로 안만나고 싶고 누군가가 다가오면 설레고 떠나면 섭섭한...(이를테면 한번 만나고 ‘다음번엔 우리집에서 같이 떡볶이 해먹자고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며 너무나 빨리 앞서가는 때문이 아닐까 ㅎㅎ) 그런데 나만 이런것이 아니고 그냥 남들도 다들 이런 마음이라고 누군가가 말해줬으면...

현대인에게 친구란 진정 상상속의 동물인가 ㅎㅎㅎ

Posted by Dusty Boot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 보게 된 비포 미드나잇. 요즘은 극장을 안가는 것뿐 아니라 영화도 거의 안봐서 기껏해야 장기 비행을 해야만 영화를 몇편 보게 되는 것 같다. 비포 미드나잇도 영화가 나왔다며 감독과 배우들이 인터뷰하는 것을 라디오에서 들은지가 꽤 오래 전이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2013에 개봉한 영화라니...ㅎㅎ


비포 시리즈는 예전 인터뷰에서 기억나는 것 중 감독이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모르겠지만 9년에 한편씩 시리즈물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미드나잇 편은 비포 선라이즈 첫 장면에서 주인공이 처음 만나게 된 기차 안에서 중년 부부가 언쟁을 벌이는 것을 오버랩되게 만들었다고 한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비포 선라이즈에서는 기차안에서 중년부부가 시끄럽게 싸움하는 것을 계기로 셀린과 제시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게 벌써 1995! 그때 둘은 비엔나로 가는 기차안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다. 비포 선셋에서는 2004년에 다시 만나 또다시 사랑에 빠지게 되고 비포 미드나잇은 2013년 결혼한지 오래되어 불꽃같은 로맨스가 사라진 부부의 사랑은 어떠한 것일까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영화에서는 둘은 결혼은 하지 않고 파트너로 사는 것으로 나온다). 진짜 감독의 말처럼 영화에서 제시와 셀린은 정말 찰지게 부부싸움을 해댄다. 그럼에도 부부이기에 마지막에는 화해하는 훈훈한 마무리를 하게 되지만 불타오르는 사랑 말고도 현실적으로는 이런 모습도 로맨스의 한 부분이라는게 감독이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더라. 극중 셀린의 말처럼 동화나 영화에서는 항상 ‘그들은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해피앤딩’인 이유는 결혼을 하고 나면 달달한 로맨스보다는 이런저런 현실에 부딪혀 싸워야 하기 때문에 더이상 보여줄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런 영화가 진정 현실적인 로맨스 영화가 아닌가. 나는 사람들이 왜 라라랜드가 현실적인 로맨스 영화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여주인공이 자기 꿈을 찾아 사랑을 버리고 떠났지만 결국에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배우가 되지도 못하고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어 우연히 남자주인공의 바에 들렀다가 그때 저남자랑 결혼했으면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를 상상하며 끝났다면 좀 더 내 입맛에 맞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ㅎㅎㅎ 여주인공이 유명한 배우가 된 부분이 결정적으로 영화를 망쳤다고 본다. 나란 여자...너무 현실적이어서 로맨스 영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자다 ㅎㅎ


별로 매력이 없지만 성공한 텍사스 출신 작가 제시와 개성있고 열정적인 파리지앵 여자 셀린. 그들 부부싸움의 주제는 제시를 위해 항상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고 느끼는 셀린의 불만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그들은 이런식의 부부싸움을 매우 자주 하는듯한 인상을 풍긴다. 처음에는 ‘와...남자가 많이 잘못했네...’ 이러다가도 ‘ 여자가 좀 너무하네...’ 이런 생각도 들다가 ‘저 여자는 어쩌면 저렇게 나랑 똑같은 소리를 하고 앉았지?’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비포 미드나잇에서의 부부싸움은 정말 우리 부부의 부부싸움과 너무 비슷해 울다 웃다를 반복하며 영화를 봤다. (비행중 영화를 관람하면 실제로 더 감성이 폭발하게 된다는 연구가 있다고 한다! ㅎㅎㅎ)


우리 부부는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는 ‘우리 대체 왜 사귀는거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싸웠다. 30년 넘게 자기 중심적으로만 살던 두 사람이 서로 맞춰가며 사귀려니 당연히 많이 싸우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결혼하고 초반에도 꽤 많이 싸웠는데 요즘은 일년에 한두번 정도 싸우는 것 같다. (싸우지 않는다고 해서 일년 내내 깨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ㅎㅎ) 게다가 예전과 다른점이 있다면 요즘은 싸워도 화난 감정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부부싸움의 이유 중 하나는 일을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 때문이다. 한번은 파파가 나에게 엄청 화가나서 ‘당신은 우리 결혼생활보다도 가족 보다도 더스티보다도 심지어는 자기 자신보다도 일이 더 중요한 사람 같아!’라고 말한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듣고 너무 무서웠다. 반박을 할수가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ㅠㅡㅠ


잘 살고 있으면서도 괜한 불안감에 항상 내가 더 많이 희생하는 것 같고 내가 더 손해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나의 경우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상대방이 잘못했거나 상대방에게 만족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해서 그리고 내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포 미드나잇에서 셀린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황당한 언쟁에 자꾸만 내 모습이 보여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그녀가 그런 언쟁을 자꾸만 하는 이유도 알고보면 자유롭고 멋진 인생을 살던 셀린이 계획에도 없던 임신으로 쌍둥이를 낳게되고 아이들의 아빠는 먼 타국땅에서 채 이혼도 하지 않은 남자였기에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건가’, ‘나 잘하고 있는건가’, ‘나는 아이들에게 나쁜 엄마가 되는건 아닌가’ 그러한 여러가지 불안감이 지속되었기 때문이지 않은가.


하지만 영화에서 그러한 부부싸움에도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멋지게 보였던 것은 제시의 이런 말들 때문이었다. ‘당신은 말이지...정말 또라이야 (You are fucking NUTS! 라고 말한다 ㅎㅎㅎ). 그렇지만 나는 그런 당신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어. 나는 당신이 바뀔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바뀌기를 원치도 않아. 그냥 당신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야.’ 영화에서 이 말을 듣고 정말 너무 깜짝 놀랐는데 이런 말들은 파파가 나에게 항상 하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상대방의 외모가 잘생겨서, 예뻐서, 일에서 성공을 해서, 돈이 많아서, 나에게 잘해줘서, 등등의 이유가 아니라 그저 당신이니까, 당신을 사랑하니까 좋은 모습도 나쁜 모습도 함께 받아들인다는 것. 그러니까 불타오르는 사랑이 아니어도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이고 좋은 시간이더라도 안좋은 시간이더라도 함께라는...그런 모습이 정말 로맨틱한 부부의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비록 종종 헤어질 듯 부부싸움을 해대더라도 말이다.


If you want love, then this is it. This is real life. It's not perfect but it's real.


Posted by Dusty Boot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국에서는 종종 커플의 데이트 비용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이지만 왠지 많은 한국 여자들이 (요즘은 이런 여자들이 줄었을지 몰라도 내가 20대 초반이었던 때만해도 이런 여자들이 참 많았다) 남자들이 비싼 밥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생일에 남자친구에게 비싼 명품 지갑이나 가방을 선물 받는 것을 큰 자랑으로 때로는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내 여자친구가 전지현처럼 예쁘면 빚을 내서라도 여자친구에게 돈을 쓰겠다’는 남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놀랍지만 이건 내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몇몇 지인들이 직접 자기 입으로 나한테 한 말이다 ㅡ,.)


그런데 매우 신기한 것은 이런 극단적인 예에 맞물려 또 다른 극단으로 ‘서양에서는 남녀가 무조건 더치페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진짜로 서양 사람들은 모든 경우에서 더치페이를 하는걸까...나는 외국에 처음 살게 되면서 이부분이 매우 궁금했다.


예전에 미국에 살때 한 독일인 커플과 함께 맥주를 먹으러 갔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 둘은 동거를 한지 3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맥주를 다 마시고 남자가 계산을 하더니 ‘자 이제 네가 나한테 50센트 빚졌어’이러는 것이었다. 띠용~ 이런게 진정 서양의 더치페이라는 것이구나. 저렇게 오랜 연인 사이에서 까지도 철저하게 50센트까지 더치 페이하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랜시간 관찰을 하다보니 미국 사람들도 그렇고 많은 서양 사람들 사이에서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밥값을 내주고 술을 사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나 역시 15년 가량 외국에 사는 동안 서양 친구들에게 (나이 불문하고) 얻어 먹은적도 많고 또 사준적도 많다. 그리고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남자가 술값이나 밥값을 내는 일은 정말 흔한 일로 이건 그냥 만국 공용의 (좀 과장되게 말해서) ‘남성적 과시’가 아닌가 싶더라.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단지 후배라는 이유로 친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의 밥값을 내주는 일이 없고 그걸 당연하게 기대하는 사람들이 없을뿐.


그래서 예전에 만났던 독일인 커플과의 일화가 너무나 궁금했는데 파파를 만나면서 물어봤더니 ‘걔들 독일 북부쪽 출신이지?’ 라더니 유럽에서도 남부쪽 사람들은 정이 많은 반면 북부쪽 사람들은 좀 쪼잔한 경향이 있어 더치페이라는 것이 괜히 더치페이가 아니라고 하더라. 유럽에서 가장 돈계산이 정확한 사람들은 바로 네델란드 사람(더치)으로 유럽 다른 나라 사람들이 ‘쪼잔한 놈들’이라고 놀려먹기도 한다고 한다. ㅎㅎㅎ 물론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나는 데이트 비용의 형평성이 문제가 된다면 데이트 통장이라는 것이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일정 금액을 넣어 놓고 누가 얼마를 썼네 걱정 없이 같이 쓰는 것. 우리나라에도 요즘은 데이트 통장을 많이 쓰지만 서양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라고 한다.


파파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매우 놀란 점이 있는데 사귄지 1년도 채 안되었는데도 통장을 합치자고 했기 때문이다. 결혼도 안했는데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파파는 굉장히 정직한 사람인데다가 모아놓은 돈도 파파가 더 많았고 연봉도 나보다 더 높았기에 나에게는 별로 손해나는 일이 아닌지라 ㅎㅎㅎ 기꺼이 동의를 하게 되었다. 결혼한 후에는 여자든 남자든 비자금은 꼭 있어야 한다는 나의 뜻에 따라 각자 받는 월급의 20%정도를 보관하는 비자금 통장을 만들게 되었다. 요즘은 집 대출을 빨리 갚는 것이 우리의 공동 목표인지라 비자금 통장도 얼마 이상의 돈이 모이면 공동 통장으로 그냥 이체를 해버리지만 말이다.


하여간 데이트 비용에 관해서 노르웨이 사람들은 어떨까? 한번은 노르웨이 문화 강좌를 간적이 있었는데 이런 부분을 궁금해하는 외국인이 많은지 강사가 이 부분을 적절하게 설명해주기까지 했다. 아무리 남녀가 평등한 노르웨이에서도 남자들이 여자에게 잘보이려고 밥을 사는 경우가 많다며 농담삼아 그런 경우 자신은 남자가 마음에 들면 얻어 먹어주고 2차를 사던지 다음번 밥을 사는데 남자가 마음에 안들면 ‘반드시’ 더치페이를 한다고 ㅎㅎㅎ


요즘도 우리는 외식을 할 일이 있으면 농담삼아 이렇게 말한다. ‘이번엔 내가 살게. 우리 돈으로 ㅎㅎㅎ’

Posted by Dusty Boot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흔히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사랑이나 행복’을 떠올린다. 사랑이나 행복 말고도 시간, 젊음, 등등 여러가지가 있을 것 같다. 요즘 드는 생각으로는 사랑도, 행복도, 시간도, 젊음도 돈으로 어느정도까지는 살 수 있는 것 같기는 해도 돈으로 이 모든 것이 완전히 해결되는 것 같지는 않다.


얼마 전 친지들 모임에 다녀온 동생이 열을 내며 해준 이야기가 있는데 대화 도중 한 친척분께서 ‘ㅇㅇ아 너희집은 돈이 많아본적이 없어서 니가 모르는거야. 돈이 얼마나 좋은건지 아니?’라고 하셨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 중에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쪽 집안 분들은 대체로 그런식으로 돈을 많이 밝히시는 분들이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그런 말이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셔서 안정적이지만 부유하지는 않았던 우리집과는 달리 친척분들 중에는 사업으로 성공하셔서 꽤 부유하신 분들도 있다. 하지만 내 동생에게 저런 말씀을 하신 친척분은 사실은 내가 어릴적 꽤 존경하던분이다. 내가 10살정도였을때 친척집에 놀러갔다가 단풍잎이 예뻐서 꺾어온적이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ㅇㅇ아 이걸 꺾어오지 말고 저기 가면 예쁜 단풍잎이 있는데 보여드리고 싶어요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걸 그랬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아직도 그때의 일이 기억날 정도이니 그분은 내가 매우 존경하는 친척분이었다. 그런데 내가 오랜기간 외국에 사는 동안 돈을 더 많이 벌으셨는지 어떻게 되셨는지 모르겠으나 요즘 그분은 그냥 돈많은 강남 복부인 같으실 뿐 내가 존경했던 그때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좋다는 돈으로 지식도, 교양도, 우아함도, 남을 위하는 마음도 사지 못하신 모양이다.


작년부터 뉴스에 많이 나오던 최순실이나 요즘 뉴스에 많이 나오는 조씨 딸들이나 돈이 저렇게 많은데 교양이 저렇게 없다는 것이 참 미스터리다. 품위나 인격같은 것은 정말 돈으로 살 수 없는 건가보다. 나는 아마도 평생 이렇게 월급쟁이로 돈이 있어본적이 없이 살것이기에 그분 말씀대로 돈이 진짜 너무 좋은 것인지는 죽을때까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진정 모르겠다. 사랑도, 우정도, 지식도, 교양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살수 없고 죽을 때 다 똑같이 죽는다면 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건지. 그냥 모른채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Posted by Dusty Boot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우리 옆집에는 10살 남짓한 딸이 둘이 있는 가족이 살고 있다. 작년 여름 날씨가 너무 좋았던 어느 날 옆집 마당에서 바베큐를 한다고 오라고 해서 간적이 있었다. 딸 친구아이도 한명 와있었는데 옆집 아줌마가 날더러 ‘ㅇㅇ씨가 한국 사람이라고 그랬죠? 이 친구도 엄마가 한국 사람이에요. 그래서 한국말도 잘하고 아빠는 영어를 쓰는 사람이라 영어도 잘하고 학교를 노르웨이에서 다녀서 노르웨이어도 잘한답니다.’ 그러시는거다. 멀리서 봤을땐 영락없는 백인 아이처럼 생겼는데 자세히 보니 약간 동양인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더라.

외국에서 사는 아이들을 보면 특히나 한쪽 부모만 한국사람인 경우 아무리 한국말을 잘한다고 해도 다 거기서 거기다. 우리 말을 알아듣기는 알아듣나 대답은 단답형이고 존댓말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런데 몇마디를 해보니 이 친구는 존댓말을 할줄 알더라. 대답도 내가 만난 다른 아이들은 ‘응!’ 이렇게 하는데 이 친구는 ‘네~’ 이렇게 예쁘게 하고 그 뒤로도 길가다가 가끔 만나면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를 하는거다. ... 그 친구 엄마는 어떤분인지 너무 훌륭하시다 ㅠㅡㅠ 이 외국땅에서 한국사람도 얼마 없는데 존댓말까지 이렇게 예쁘게 가르치시느라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셨을까.

하여간 너무 기특하고 예뻐서 다음에 만나면 칭찬을 좀 해줘야겠다 싶었는데 무슨 말을 해줘야 칭찬이 될까가 참 고민이 되는 것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내가 이런 고민을 한 뒤로는 그 친구를 만난적이 없는데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 계속 고민중이다. ‘ㅇㅇ이는 참 착하구나...’ 이렇게 말해줘야 하나 ‘ㅇㅇ이는 참 예쁘구나...’ 이렇게 말을 해야 하나. 이 둘 다 나에게는 너무나 마음에 안드는 칭찬이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왠지 ‘착한게 왜 칭찬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자들에게는 유독 이게 칭찬이 아닌데 여자들에게만 칭찬이지 않나. 게다가 이런 말은 자꾸만 여자들을 ‘착한 여자 병’에 걸리게 만드는 것이고 말이다. 왜 남자는 야망을 가져도 좋고 성공을 하는 것이 미덕인데 여자는 착해야 하는건지 말이다. 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여자들이 성공하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고도 하더라.

얼마 전 TEDTalk에서 들은 한 강연에 의하면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완벽해야한다는 강박감을 훨씬 더 많이 가진다고 하더라. 강연을 한 분이 예로 든 이야기에 따르면 자신은 학생들에게 컴퓨터 코딩을 가르치는데 항상 반에 아무것도 못하겠다며 스크린을 백지상태로 놔둔채 절망에 빠져있는 여학생들이 한두명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여학생의 옆에 가서 Ctr+z(뒤로가기)를 몇번 해보면 그 학생은 정말 많은 것을 썼다 지우고를 반복했더라는 것이다. 많은 것을 시도해봤지만 실패하면 그냥 백지를 내는 것은 주로 여학생들이고 자기는 실패했지만 이러이러한 것들을 해봤다라고 보여주는 사람들은 남학생들이였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던 파파가 혀를 차며 나에게 당신도 저런적이 있었냐고 물어보는데 나도 그런적이 있었다. 대학생때 교양국어 수업에서 발표수업이 있었는데 몇주동안 준비를 했지만 발표 할 거리가 잘 나오지 않아 나는 내 발표날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까짓거 아무도 기억도 못할 발표...뭐 그리 완벽하게 했어야 했다고... 예전에는 꼼꼼함의 대명사였던 나였는데 지금의 나는 성격이 조금 변해서 지금의 나였다면 말도 안되는 내용이었어도 대충 준비해서 대충 발표를 했을 것이다. 까짓거 뭐 그냥 조금 망신 당하면 그만이지 ㅎㅎㅎ



얼마 전 동료분의 오피스에 갔다가 이런 물건을 봤다. I’m not bossy. I’m the boss! 누군가에게 선물받았다고 자랑을 하시는데 이 말 참 맞는 말이다. 나는 말 그대로 보스인데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밑에 사람이 기분 나빠할까 이런 걱정을 하는걸까 ㅎㅎㅎ 여자라면 한번쯤은이 아니라 아마 매일매일 생각하는게 아닌가 한다.

하여간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여자아이들에게 적절한 칭찬은 대체 어떤것인지. 어떻게 하면 미래의 여자아이들은 완벽하고 예쁘고 착한 여자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Posted by Dusty Boot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저(여자)도 시험 공부를 너무 꼼꼼하게 하느라 시험 범위 부분을 다 못 보고 시험에 들어간 적이 있어요 -_- 꼼꼼함은 장점도 되지만 단점이 될 때도 있더라고요.
    이제는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공부를 한답니다. 그러다가도 제 안에서 자꾸 꼼꼼함이 나와서 진도가 안 나갈 때도 있지만요 ;-)

    • ㅎㅎㅎ 그죠. 요즘은 완벽함보다는 끝을 내는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충 하더라도 끝내는 쪽으로 하려고 하고 있어요.

우리 부부는 결혼한지 3년이 되었지만 아이가 없다. 아이를 절대 낳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박한 마음으로 마음 고생하며 아이를 가지려고 온갖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다.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적으로 생기지 않으면 그냥 그런대로 살자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생기면 감사하게 낳고 기르면 되는 것이고 안 생기면 그냥 우리 부부 둘이 오손도손 더스티와 함께 신혼처럼 살면 되는게 아닌가. 그러다가 나중에 꼭 아이를 가져야겠다 싶으면 입양을 할수도 있는 것이고…


우리 둘은 이렇게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데 주위에서 항상 궁금해들 한다. 너희는 안낳냐. 좋은 소식은 없냐. 이게 꼭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더라. 서양에서도 이런 것들을 물어본다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다만 기분 나빠질 정도로 조언을 해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뿐.


얼마 전 직장 동료와 그의 남편이 집에 저녁을 먹으러 왔다. 그들은 작년 이맘때 아이를 낳아 이제 아이가 한살이 되었는데 나는 식사 준비를 하느라 몰랐는데 동료의 남편이 파파에게 자기는 아이를 낳고 싶어도 못낳는 사람들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에게 너무 안됐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나중에야 그런 이야기를 듣고 정말 기분이 나빠졌다. 그는 우리를 친한 친구로 생각해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그는 동료의 남편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인지라 그런 오지랖은 전혀 고맙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가 노력해도 아이를 못낳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하게 된건지...우리가 봤을 때엔 지난 일년간 아이 때문에 어쩔줄 몰라 쩔쩔매는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 안되 보였는데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남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이 내가 알지 못하는 길을 가고 있으면 ‘저렇게 하면 안되는데’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 하시는 어른들이 사실은 ‘이렇게 안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게 눈게 보여서’ 그런게 아닌가.


하지만 사실은 나 역시 그랬다. 우리 옆집에는 88세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다. 작년 여름 암 투병을 하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혼자가 되셨다. 잘 알지는 못했지만 할머니의 장례식엘 갔었는데 두분은 함께 사신지 50여년이 되었지만 결혼은 하지 않으시고 자녀도 없이 두분이서만 사셨더라. 그런데 장례식에서 든 생각이 자녀가 없으니 노년이 참 초라해 보이는구나 하는 것이다. 여든이 되셔서 자녀가 몇 있었으면 장례식에 자녀들 가족, 손자 손녀들도 있었을 텐데 할머니의 장례식에는 죄다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 뿐이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오면서는 ‘이래서 자식이 있어야 하는건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무슨 일이 있어서 할아버지 댁에 들어가 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손님이 와서 즐거우셨는지 할아버지는 집 구경도 시켜주시고 (이런 일이 노르웨이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옛날 사진첩을 꺼내 보여주셨다. 사진첩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젊고 멋지던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할머니는 외국 여행다니는 것을 좋아하셨다고 하는데 외국에서 휴가를 즐기시던 모습이나 가족 친지들이 모여 파티를 하는 모습 등 젊은 시절 즐거운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가장 만감이 교차했던 사진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할머니가 반라의 모습으로 스페인 남부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진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말기 암으로 고생하시며 초췌한 모습만을 봐왔는데 그분에게도 저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파파에게 했더니 자신도 얼마 전 드릴게 있어서 할아버지 댁에 갔다가 사진첩을 봤다고 한다. 그러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마도 우리가 알지 못할 정도로 와일드하고 즐거운 인생을 사셨을거란 이야기를 하더라. 아이가 없고 사업 성공으로 돈도 많이 버셨을테니 얼마나 씀씀이가 크게 즐겁게 사셨겠냐는거다. 아마도 매일매일이 파티의 연속이 아니었겠냐고 농담삼아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고나니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그분들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오만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단지 그 안을 들여다 본적이 없다는 이유에서 남의 인생이 행복했다 혹은 초라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 된 것인지 말이다.


그래도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역시 한가지 인생만을 살아봤는데 그와는 다른 인생이 어떤지 어떻게 아는가. 아이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이가 없는 중년이나 노년은 살아보지 않았지 않나. 단지 상상만 할 수 있을 뿐. 내 작은 상상의 울타리에 남의 인생을 가두어 저 사람의 인생은 행복하다 불행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 나에게 남이 모르는 무궁무진한 세계가 있듯, 남들에게도 내가 모르는 무궁무진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행복에 다다르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지 않나. 단지 내가 모르는 길이라고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만함이다.

Posted by Dusty Boot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는 오랫동안 공부를 한 사람이라 꽤 나이가 들어서까지 친척분들께 용돈을 받았다. 대학 들어갔을 때엔 대학갔다고 용돈,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지방에서 서울에 살면서 공부하기 힘들지 하며 용돈, 유학갈땐 장하다며 용돈, 유학하면서 가끔 한국에 들어가면 외국에서 공부하느라 힘들지 하며 용돈. 이렇게 서른 넘어까지 친척분들께 뜯어낸 용돈은 결혼을 하며 축의금을 끝으로 막을 내린 것 같다. 받을 때엔 그래도 감사하게 받았지만 돈을 버는 어른이 된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분들이 넉넉하신 살림이었건 아니었건 적지 않은 10만원 30만원을 그냥 선뜻 봉투에 담아주신 친척분들의 정성이 정말 대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돈을 벌고보니 누군가에게 30만원 건내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던지. ㅎㅎㅎ


나는 이렇게 친척분들께 큰 돈을 염치 없이 덥석덥석 받고 자라서 그런지 이젠 친척 조카들을 만나면 왠지 용돈을 쥐어줘야할것만 같다. 그런데 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한국에서 돈쓰는 감이 많이 떨어져 한국에 가면 돈가치가 어떻게 되는지 참 잘 모르겠더라. 몇년 전에 한국에 갔을 때 친척 조카와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초등학교 6학년인 조카에게 용돈을 주고 싶은데 대체 얼마를 줘야할지를 모르겠던 것이다. 그 용돈이란 것이 너무 많이 줘서 다음번 기대치가 너무 높아지면 안되지만 또 너무 적게줘서 아쉬워도 안되는 것이 아니겠나. 얼마를 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엄청 고민을 많이 했던 것은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야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용돈주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은지라 한번은 파파의 친척집에 갔을 때 대체 독일에서는 이런 관습이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했다. 사촌 조카가 세명 있는 친척집에 놀러갔는데 집에 돌아갈때 파파에게 애들에게 용돈을 줘야되는지 물어봤더니 파파가 놀라며 하는 말이 독일에서는 그렇게 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놀러갈때 작은 사탕같은 선물을 사가는 것은 괜찮은데 돈으로 주는 것은 애들 버릇나빠진다고 싫어한다고 한다. 선물도 너무 소박하게 사탕 하나정도라니.


이런 관습은 아이들에게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더라. 우리야 명절이나 생신이되면 부모님이나 시부모님께 돈을 좀 쥐어드리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데 독일에서는 정말 아니었다. 몇년 전 나의 시어머님의 65세 생신 잔치가 성대하게 (?) 열렸는데 (독일에서는 은퇴한 뒤 처음 맞는 65세 생일에 우리나라 환갑잔치처럼 큰 잔치를 한다) 그때 아버님이 주도하여 여러 사람들이 돈을 모아 어머님께 큰 선물을 사드렸다. 엄청 비싼 선물을 받았다고 어머님께서 정말 감격하셨는데 그 엄청 비싼 선물의 가격은 300유로가 조금 넘는 것이어서 좀 놀랐다. 그정도 가격이면 그냥 내돈으로 하나를 사드렸어도 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처음에는 이런 문화가 우리 집안 사람들만 엄청 짠돌이라 그런줄 알았는데 다른 독일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정말 그정도 선물은 독일에서는 엄청 비싼 선물에 속한다고 하더라. 보통은 100유로정도 선물이어도 꽤 비싼 것이라고. 그런데 65세 잔치였기에 특별한 선물이라 그정도를 받는 것이라고 하더라.


연말이나 명절에도 나는 왠지 어머님께 용돈이라도 좀 드려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는데 파파에게 물어봤더니 독일에서는 선물을 주고 받는 것은 좋지만 돈으로 주면 너무 성의없는 것이라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하더라. 작은 정성이 담긴 것을 주고 받는 것이 훨씬 좋은것이라고. ......근데 그걸 누가 모르는게 아니지 않나. ㅎㅎㅎ 우리야 합리적으로 크고 작은 정성이 담긴 돈을 주고받는 것일뿐인데 ㅋㅋㅋ 그래도 그나마 파파는 내가 우리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것은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서로 문화의 차이가 있는 것일뿐이라는 입장이라 다행이다. 별것 아닌것 같지만 문화의 차이를 몰랐다면 얼마나 오해가 많이 생길 수 있는 것인가 ㅎㅎㅎ


그래도 나는 한국사람인지라 한국에 가면 친척분들께도 조카애들에게도 용돈을 주겠지만 독일의 시댁 식구들에게는 마음과 정성만을 드리려고 노력중이다. 말만 들으면 쉬울것 같지만 마음과 정성을 드리는 것은 얼마나 힘든일인지 모르겠다. 정성이 담긴 카드를 써서 드리거나 정성이 담긴 작은 선물을 보내드리는 것은 돈을 송금해드리는 것보다 얼마나 힘든일인지 ㅎㅎㅎ 이렇게 나는 게으르고 성의없는 독일 며느리가 되어가고 있다.

Posted by Dusty Boot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공감해요!! 저는 미국 시댁 가족들 생일 때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 작은 선물과 카드를 보내드려요. 여기도 용돈 보다는 정성이 깃든 작은 선물과 직접 쓴 카드를 좋아해요. 그런데 늘 선물 고를 때마다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그냥 용돈 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

적극적인 여자

잡담, 일상 : 2017.07.02 18:28

파파가 몇번 농담으로 독일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해준 말이 있는데...

세상에는 두가지 여자가 있는데 한가지는 의사랑 결혼하는 여자이고 다른 한가지는 서른 이전에 의사랑 결혼 못하면 의사가 되버리고 마는 여자라며 날더러 당신은 두번째 종류란다.


매우 기분이 나빠지는 부장님 스타일 농담이다. (,.)


아마도 서로 잘 모르는 사이였을 때 이런 농담을 들었다면 다시 만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파파는 사실 페미니스트이며 우리는 둘 다 박사학위가 있지만 의사는 아니다 (not that kind of doctor).


하지만 이 농담은 날더러 당신은 매우 적극적이다라는 칭찬을 하기 위해서 하는 농담으로 나는 사실 매사에 매우 적극적인 여자다. 한국에 살때엔 나댄다는 소리를 들으며 선배들에게 미움을 사기도 했는데 나는 나대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생각할때 나대는 사람이라는 것은 남의 일에도 적극적인 사람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대하는 말인것 같은데 나는 내 일에는 적극적이지만 남의 일에까지 적극적이지는 않다.


외국에 살면서 느낀건데 나는 사실 서양여자들을 기준으로 봤을때 그냥 매우 정상적인 여자더라. 특히나 내 주위에는 ‘강한 여성’류의 여자들이 많은지라 왠지 나는 소극적인 사람인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가끔씩 기분이 묘해지기도 했다. 드세고 나댄다던 그 여자는 어디갔나.


미국에서 그냥 평범한것 같은 여자로 살다가 ‘아...나는 정말 적극적인 사람이구나’하고 느낀적이 몇번 있었는데 한국인 여자친구들을 사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미국에서는 왠지 항상 한국인이 적은 곳에 살아서 그랬는지 한국인 지인이 거의 없었다. 10년 사는 동안 한국인 친구를 사귀게 된건 8년쯤 되던 때였다. 친하게 지내며 밥도 자주 해먹고 그랬는데 딱 꼬집어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나는 꽤나 적극적인 사람이구나’라고 느낀 것은 그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 때문이었다.


내가 그런걸 어떻게 해?’


나는 이런류의 말을 해본적이 한번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왠지 내 주위에 있던 여자들은 저런 말을 하는걸 들은적이 없는것 같은데 오히려 나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아니...자기 인생에서 뭐든 자기가 안하면 누가 하나?


잠시 잊고 있었는데 노르웨이에서 중국인 여자친구들을 사귀면서 또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중국인 친구 중 두명이 남편에게 차가 없어 불편하니 차를 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정작 그녀들은 운전면허가 없다. 그러니 차를 사자는 말은 곧 남편 당신이 나를 모시러 왔다가 모시고 갔으면 좋겠다는 말인거다. 그래서 왜 직접 운전면허를 딸 생각은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여러가지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는데 나는 내가 차를 타고 싶으면 내가 직접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좀 화가 났다.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내가 직접 가서 알아보고 사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내가 직접 가서 해치우고, 내가 돈이 필요하면 내가 직접 돈을 벌고, 내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열군데라도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돌려 답이 나올때까지 알아보고, 나는 원래 다 그런건줄 알았는데 내가 좀 유별난 사람인건가. 그렇다고 내가 누군가에게 뭘 부탁하는걸 잘 못하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필요하면 친하건 안친하건 부탁도 매우 잘 한다. 그냥 앉아서 누가 해주기를 기다리는걸 할줄 모를뿐. 성질이 매우 급한것도 한몫 하는 것 같다.


나는 신데렐라류의 소극적인 공주님 이야기가 너무 싫다. 왜 누가 와서 자기를 구해줘야만 하는 그런 소극적인 여자가 로망인건가. 왜 내가 직접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겠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인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수 있을 것 같은 똑똑한 여자들이 말이다. 어제 친구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다른 친구가 한 ‘내가 그걸 어떻게 해?’라는 말을 듣고 또 화가 나서 문득 다시 한번 예전의 일들이 떠올랐다. 서양 여자들에 비해 동양 여자들은 아직도 자기 인생에 덜 적극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자기 커리어가 걸린 일인데 못할건 또 뭔가.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렇다고 내가 그녀들을 나무라지는 않을 것이지만 아침이 되도록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Posted by Dusty Boot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중국인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드는 생각이 있는데 우리는 너무나 먹고 사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가장 크게 들때가 노르웨이 생활과 그 전에 살던 곳의 생활을 비교하는 대화를 할 때이다. 이때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노르웨이는 식료품이 너무 비싸.’로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사실 매우 맞는 말이다. 노르웨이는 먹고 사는게 어찌나 비싼지...아마도 절대적으로 본다면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곳이 아닌가 싶다. 이건 누구나 다 인정하는 사실이기에 별로 놀라운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독 한국사람들이나 중국사람들은 이런식으로 그 다음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예전에 살던 곳은 어찌나 살기가 좋았는지... 먹고 사는게 얼마나 쌌는지 알아?’라는 식이다. 그런데 먹고사는 것은 정말 싸지만 미국이란 나라나 중국이란 나라는 정말 살기가 좋은 곳인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먹고사는 것이 싸기만 하면 정말 살기가 좋은 나라인가...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할것이 분명한데 무의식중에 우리들의 마음속엔 먹고 살기 싼 나라는 좋은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져 있는게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먹고사는 것이 우리 생활에서 정말 중요하고 큰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중국인 친구가 하는 말 중 자기는 노르웨이로 이사오기 전에 오클라호에 살았는데 오클라호마가 너무 살기 좋았고 그곳이 너무 그립다는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10년정도를 살았지만 오클라호마가 너무나 살기 좋았다는 사람은 정말 처음 봤다. 오클라호마에 대한 대체적인 인식은 매우 시골이며, 날씨가 정말 안좋으며 (토네이도를 동반한 흙먼지 바람이 항상 불어댄다고 한다), 매우 보수적이어서 인종차별도 심하고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진화론과 창조론을 동시에 가르치는 (,.) 그런 곳이다. 그런데 내 친구가 좋아하는 부분은 오클라호마는 물가가 너무 싸서 슈퍼마켓에서는 마음껏 물건을 살 수 있고 마음껏 외식을 할 수 있었으며 큰 집에 살면서 큰 차를 몰았는데 노르웨이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친구는 약간 극단적인 예여서 좀 놀라웠는데 꼭 오클라호마가 아니어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많은 경우 ‘식료품이 너무 싸고 외식을 자주 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들이 생각하는 삶의 질을 간음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이 조금 슬퍼진다. 과연 우리 삶에서 먹고 사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


노르웨이에서는 식료품이 매우 비싸고 외식하는 것이 매우 비싼것은 정말 사실이다. 다른 주변국가(덴마크, 스웨덴)와 비교해봐도 노르웨이는 이런것이 월등히 비싸다. 그런데 노르웨이에서 식료품가격과 외식하는 것이 비싼 이유중 하나는 이런것에 세금이 많이 붙는데다가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연봉을 받으며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인들도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동료분들께 들은 말에 의하면 노르웨이는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농업인들을 지원해준다고 한다. 노르웨이에서는 고기값이 정말 비싼데 축산업을 하는 사람들은 국가에서 오히려 돈을 더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행복한 농업인들이 생산한 농산물은 조금 더 질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먹는 것이 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농사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엄청나게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게 싸다는 것은 결국은 그것을 생산한 사람들이 많은 돈을 받지 못한다는게 아닌가? 값싼 채소와 과일을 생산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어디에선가는 남아메리카에서 온 불법 체류자들이 노예처럼 일하고 있을 것이며 슈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최저시급만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2킬로그램이나 되는 닭을 슈퍼에서 한마리에 5-6달러에 살수 있는 곳이 미국이다. 그럼 그 닭을 생산한 사람은 대체 닭 한마리당 얼마를 받는건가. 그 농가의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까. 그렇게 생산된 닭들은 대체 어떠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인가. 또 우리가 값싸게 단돈 10달러를 주고 레스토랑에서 사먹은 음식을 만든 주방장 역시 최저시급을 받으며 그 음식을 가져다주고 식탁을 치운 사람들은 최저시급조차 받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살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최저 시급을 받으면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면 그렇지 않다. 예전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그런데 요즘들어 왜 노르웨이는 물가가 비싼가를 생각하다보니 이런 생각들이 많이 든다.


이제 나는 아무리 먹고 사는 것이 싸더라도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 나라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는 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 어느 한곳에서는 내가 소비하는 것들을 더 값싸게 생산하기 위해 노예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 혼자 많이 소비하며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한 삶일까. 내 아이들이 폭력적인 사회에서 인종차별을 당하며 살아도 행복할까. 아이들이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창조론을 배우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인가. 언론이 통제되어 눈과 귀가 막힌채 누군가가 옳다고 말해주는 것만을 믿으며 삶을 사는 것이 좋은 삶일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다보니 풍족하게 잘먹고 사는 것만이 잘사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우리나라에서 흔히들 하는 말중에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건데’라는 말이 있지 않나. 나는 요즘 이게 참 잘못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G20에서도 수준높은 경제수준을 가진 나라에 들었다고 자부하는 나라의 사람들이 아직도 ‘먹고 사는것’에만 이렇게 치중을 하고 있다니. 이제는 다같이 ‘잘사는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나만 넓은 아파트에서 비싼차를 굴리며 명품가방을 들면 정말 잘살게 된 것인지.



Posted by Dusty Boot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구구절절 너무 옳으신 말씀이라 그 어떤 의견을 덧붙여봐야 사족이네요 . 잘 읽었습니다~

  2. 제가 요즘 태백산맥을 재미있게 읽고 있거든요. 벌써 5권을 다 읽었네요. 그런데 태백산맥 읽다보니 내가 예전에 태어났으면 빨갱이 소리 들었겠다 싶어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