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회사 동료중 스페인에서 온 젊은 여자가 있는데 그는 자원봉사의 여왕이다. 정말 어찌나 동해번쩍 서해번쩍 여기저기 자원봉사를 하는지 참 대단해보이더라. 어떻게 그렇게 자원봉사를 많이 하게 되었느냐고 했더니 처음에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했는데 자꾸 하다보니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좋아 계속 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이웃에서도 보니 베르겐에 여러가지 행사가 있거나 할 때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이 꽤 많아 나도 올해 초 새해 목표로 자원봉사를 두개정도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하긴 생각해보니 우리도 그리그 피아노 콩쿠르때 자원봉사 차에서 참가자 호스트 페밀리를 했으니 자원봉사를 안해본것이 아니다. 이것저것 생각해보다가 베르겐에서 매년 열리는 예술페스티벌인 Festspilene(베르겐 페스티벌)라는 행사에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다.



베르겐 페스티벌은 5월 마지막주와 6월 첫째주 이렇게 2주일간 진행되는데 홈페이지에 자원봉사란이 있어 자세히 봤더니 매해 2월부터 자원봉사 신청을 받는다고 되어있더라. 꽤 큰 행사이다보니 여러가지 다양한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이중에서 나는 아티스트 컨택이라는 부분에 자원봉사 신청을 했다. 나는 노르웨이어를 잘 못하는데 어떡하지라고 걱정을 했으나 자원봉사는 노르웨이어를 못해도 할 수 있고 아예 자원봉사자 오리엔테이션부터 거의 모든 것을 영어로 진행해서 참 고마웠다. 아티스트 컨택이라는 것이 뭐 엄청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고 페스티벌 참가 아티스트가 베르겐에 도착하면 호텔에서 기다리다가 만나서 인사를 하고 아티스트 배지와 공연 일정표등을 주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조금 도와주는 것이다.


베르겐 페스티벌이 열리는 2주 동안 나는 6팀의 아티스트를 만나 연습실로 에스코트 해주기도 하고 네일샵에 따라가주기도 하고 짐을 들어주기도 하고 택시를 잡아주기도 했다. 별것 아니었는데 이런 별것 아닌 일을 조금 하고 받는 자원봉사자 혜택은 엄청나서 거의 모든 공연을 무료로 볼 수 있고 마지막 날에는 자원봉사자들만을 위한 파티도 매우 성대하게 따로 해줬다. 내가 만난 아티스트들 중 매우 재미났던 사람은 Eivør라는 이상한 이름의 가수였는데 무대에서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내뿜는 가수였지만 현실에서는 엄청나게 푼수같은 언니여서 재미있었다. 둘이서 네일샵을 찾아 헤메느라 어찌나 우스웠는지 ㅎㅎㅎ 한 자원봉사자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경과 함께 플뢰옌에 갔다가 커피도 마셨다고 자랑을 하던데 정작 그는 안드라스 쉬프가 뭐하는 사람인지 잘 몰랐더라는... ㅠㅡㅠ 나도...나도 안드라스 쉬프 만나고 싶었는데...나는...나는 팬인데...ㅎㅎㅎ


하지만 안타깝게도 5월 말 6월 초가 나에게는 일 때문에 너무나 바쁜 때여서 페스티벌을 많이 즐기지 못했고 자원봉사도 생각보다 열심히 하지 못해 아쉬웠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원봉사를 하다가 일을 열심히 해서 그 다음해에는 직원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더라. 또 자원봉사에서 만난 인맥을 통해 알바나 직장을 구하게 되는 경우도 여러번 들어봤다. 그러니 한번 해볼만 한 것 같다. 게다가 베르겐은 매우 작은 도시인지라 (하지만 작은 도시인데 비해 이런 행사를 하면 꽤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오게 되는...) 이런 자원봉사를 하면서 유명인을 만나게 되는 일이 드물지 않아 재미나다. 이번에 나는 아티스트들만 만나고 자원봉사를 하며 다른 사람들을 많이 못만난 것이 좀 아쉽다.


노르웨이에 온지 얼마 안되는 사람이라면 이런식으로 관심있는 분야에 자원봉사를 하면서 경험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꼭 뭔가 얻으려고 한다기 보다는 시간이 된다면 조금이나마 사회에 기여하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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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달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병가라는 것을 써봤다. 우리 회사는 근무 시간이 매우 자유로운데다가 조직적으로 매우 수평적인 곳이어서 내 위로 몇명 없기에 여태껏 몸이 안좋으면 딱히 어디다 보고 할 일 없이 그냥 회사에 안가고 집에서 일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로 병이 크게 난지라 병가를 한번 내보기로 했다. 상태가 안좋은 상황에서 회사에 가서 우리 부서 HR메니저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다른 회사들 중에는 3일 이상 쉬고 나면 공식적으로 병가를 내야하는 곳도 있는데 우리 회사같은 경우에는 이 기간이 8일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의사의 소견서 없이도 아프면 그냥 집에서 8일까지 쉬어도 된다고 한다. 그리고 더 쉬어야하는 경우에는 병원에 가서 의사의 소견서를 받아오면 공식적으로 병가를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일단은 진짜로 아파서 간거라 의사가 별 말 없이 일주일 병가 신청을 해줬다. 일주일을 쉬어보고 그래도 계속 안좋으면 자기한테 메시지를 보내던지 다시 병원에 오라고 하더라. 그런데 특이한점이 있다면 이것을 온라인으로 다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의사가 직접 노르웨이 노동복지청 홈페이지에 등록을 하고 그러면 이메일로 나에게 메시지가 오는데 내가 직접 온라인에 접속해서 이것저것 질문에 답을 한 뒤 회사에서 담당자의 이름을 남기면 자동으로 그 사람에게 전달이 되어 결제를 받으면 끝이다. 소견서 없이 8, 병가 일주일 이렇게 이주 조금 넘게 쉬고나니 너무나 무료해서 다시 회사에 나가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좀 안좋다 싶으면 하루정도 그냥 집에서 쉬곤하지만 3주동안 병이나 집에서 쉬는건 나같은 사람은 정말 못할짓이었다 ㅎㅎㅎ


이번 기회에 노르웨이 노동복지청 홈페이지에서 병가에 대해 읽어봤는데 노르웨이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의 경우 52주까지 병가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처음 16일은 회사에서 금전적으로 병가를 지원해주게 되어있고 그 이후의 기간은 노동복지청에서 지원을 해줘 병가를 낸 동안에도 월급을 100%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파파의 말에 의하면 노르웨이만 이런것이 아니고 독일과 같은 나라 역시 회사에서 병가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도록 되어있는데 그 이유는 직원들이 번아웃증후군에 걸리는 것보다 단기간 병가를 내고 완쾌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회사 입장에서 값싸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직원들이 양심적으로 이런것을 이용할 때 가능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한국사람이라면 아마도 ‘죽을만큼 아프더라도 학교/회사에 가서 죽어라’이런 말을 살면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고등학교때 선생들께 정말 자주 듣던 말이다. 아프면 아플 수 있고 쉴 수 있는 것도 내 권리인데 이런것을 사회적으로 보장해주는 것도 ‘인권존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세한 것이 궁금하신분은 여기로

https://www.nav.no/en/Home/Benefits+and+services/Relatert+informasjon/sickness-benefits-for-employees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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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 살다 노르웨이에 이사를 온지라 노르웨이에 온 첫해에 미국에서 쓰던 운전면허증을 노르웨이 운전면허증으로 바꿔야했다. 한국의 운전면허증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의 운전면허증도 도로주행 시험을 합격하면 노르웨이 운전면허증으로 바꿀 수 있다. 단 이 시험은 70분간 일대일로 감독관이 조수석에 탄채로 진행되며 한방에 합격하지 못하면 필기시험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다행히 한번에 합격을 하기는 했지만 떨어지지 않기 위해 연수도 여러번 받고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모르겠다. 별것 아닌거로 무슨 호들갑이냐고 할수도 있겠지만 내 주위에는 이 시험을 만만히 봤다가 떨어진 사람도 있었다!


하여간 노르웨이에서는 운전이라는 것을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운전면허 시험을 매우 까다롭게 만들어 운전이 미숙하거나 법규를 잘 모르는 사람은 합격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작년 노르웨이 전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단 13명이라고 한다. 땅덩어리가 넓고 사람이 적으며 도로가 뻥뻥 뚤려있으니 당연한게 아니냐고 생각할런지도 모르겠지만 노르웨이에서 한번이라도 운전을 해본 사람이라면 잘 알것이다. 땅이 아무리 넓은들 내가 달려야하는 도로는 항상 꼬불꼬불한 산길에 차가 한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그런 길에 맞은편에는 엄청 큰 트럭이 언제 달려올지 모르는 그런 곳이라는 것을. 게다가 사시사철 눈과비로 도로사정은 좋지 않고 산사태가 나 길을 달려야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교통사고 사망자가 한해에 13명이라는 결과는 정말 너무나 신선했다. 이 이야기를 시아버님께 했더니 당신께서 사시는 독일의 작은 마을 옆 고속도로에서 한해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만도 13명이 넘는다며 놀라시더라.


지인께 물어보니 노르웨이는 원래 이렇게 교통사고가 적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언젠가 법규를 크게 강화한뒤부터 교통사고 사망자가 현저히 줄었다고 하더라. 그중 한가지 매우 강력한 법규는 바로 무관용 알콜허용법 (zero tolerance alcohol and driving)일 것이다. 다른 유럽국가들과 달리 노르웨이는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것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다. 법적으로 혈중알콜농도 허용기준이 0.01%라고는 하나 이는 우리나라의 0.05%보다 훨씬 낮은 기준으로 유럽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이라고 한다. 기준이 정해져있기는 하나 안걸리면 그만이라는 분위기가 아니고 (미국에서는 거의 그런 분위기) 사회적으로 음주운전을 엄청나게 큰 범죄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아예 무허용이라고들 하는 것 같다.


그 다음으로 큰 이유는 바로 운전 제한속도가 매우 낮게 설정되어있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고속도로는 제한 속도가 80-90킬로미터이다. 마을에서는 50킬로미터이고 학교근처는 30인것으로 알고 있다. 북부 핀마르크에 가면 100인곳도 있지만 그런곳은 가도가도 차를 만나지 않는 그런 한적한 고속도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르웨이에서는 속도위반 역시 매우 큰 범죄로 여겨 특히나 학교근처에서 속도위반으로 걸리면 면허취소에 벌금에 감옥행인 경우도 있다고. 생각해보면 제한속도 30인곳에서 50으로 달리는 일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그런데 이러다가 걸리면 단박에 면허취소가 된다.


법규를 강화한 결과 사망사고가 줄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인것 같다. 어디든 빨리빨리 가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게 목숨과 바꾸면서까지 해야할 일인가라고 묻는다면 정말 아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교통법규가 궁금한 분은 여기로 https://www.vegvesen.no/en/home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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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한 잡지에서 노르웨이 의사들중 90%는 아플때 아스피린 한 알 먹고 잠 잘자고 밥 잘먹으면 거의 모든 병이 낫는다는 생각을 한다는 기사를 읽은적이 있다. 거기에 더불어 많은 의사들이 실제로 아프다는 많은 사람에게 밖에 나가서 맑은 공기를 쐬며 하이킹이나 하라고 말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많은 사람들이 진짜로 의사에게 이런 말을 들은적이 있으며 맞는 말이라고들 하더라.


최근 매우 아파서 병원을 찾았는데 내 주치의는 휴가를 가고 없어 클리닉에 있는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받게 되었다. 예전에도 그에게 진료를 받은적이 있었는데 눈떨림이 너무 심하다고 불평하는 나에게 견과류를 많이 먹으라고 했던 사람이다. 그땐 그게 참 신선했었는데 이번에는 진짜로 너무 아파서 간지라 약간 상황이 달랐다. 바이러스성 전신 근육통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병명이야 어찌되었던 이렇게 죽을만큼 아픈적은 정말 예전에 엄청난 대수술을 받았을 때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진통제를 먹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정도이긴 했는데 아침에 약기운이 떨어진 채 일어나면 정말 이러다가 죽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런 이야기를 의사에게 하며 사실 병원을 찾은 이유는 회사에 병가도 내야할 것 같고 무엇보다도 당장 사흘 뒤에 출장이 잡혀있는데 어찌해야하나를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의사는 내말을 유심히 듣더니 날더러 자기가 볼때엔 이틀뒤면 다 나을 것 같고 출장도 가고싶으면 가라는 것이었다. 띠용~ @_@


그 말을 듣고나니 좀 화가 났다. 아니...대체 죽을 것 같이 아프다는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들었나. 말은 그렇게 해도 병가도 써주고 약도 몇가지 잘 처방을 해주더라. (독일에서는 아플땐 아파야한다며 약도 잘 안준다는 말을 들은적도 있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아프다는 사람에게 저리도 별일 아니라는 말을 하는 의사라니...순간 ‘돌팔이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땐 너무 아파서 성질이 확 났는데 나중에 정신이 들고 생각해보니 그 사람은 말로만 듣던 전형적인 노르웨이 의사였던 거구나 싶더라.


그래도 의사는 아프다면 좀 동정을 좀 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예전에 미국에서 다니던 마지막 직장에서는 Kaiser Permenente라는 꽤 괜찮은 전국적인 의료 조합에 가입을 해줬다. 내 주치의였던 사람은 젊은 샌프란시스코 출신 중국 이민자 3세 여자 의사였는데 굉장히 수다스럽고 친근한 아줌마여서 의사라기보다는 헤어드레서와 더 비슷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ㅎㅎㅎ 그런데 항상 아파서 의사를 찾아가면 주치의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의료진이 마치 꼬마에게 말하듯 ‘Ah...you poor thing!’이러면서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하도 다들 그래서 ‘아...이사람들 교육 받은거구나’ 이런 느낌이 들긴 했는데 그래도 얼마나 좋은가...아픈 사람에게 ‘이정도 가지고 뭘 그렇게 엄살이에요? 밖에 나가보세요. 댁보다 아픈 사람 널렸어요!’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 ‘아유...많이 아프시겠어요.’ 이렇게 빈말이라도 해주는 것이 말이다.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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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아픈데 진통제 처방은 안 받겠다고 말을 합니다.
    아픈 원인을 찾아야지 아플때 진통제 먹어서 그증상을 덮어버리고, 약효가 지나면 또 진통이 찾아오는 반복이 되는것이 해결법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이죠. 그래서 병가를 몇번 받은적이 있습니다.^^

    가정의가 제 증상에 조금 더 성의를 보이고, 뭔가 그 원인 혹은 해결법을 찾아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감사하죠.^^

예전에 미국에 살때 스웨덴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그녀는 미국 잠깐 방문하러 왔다가 일주일만에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을 만나 박사과정을 하게되고 일주일만에 남편이 될 사람을 만나 그와 일년정도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친구보다 나이가 꽤 많아서 조금 놀랐는데 뭐...서양에서는 사랑 하나만으로 결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그런가보다 했다. 그 친구가 자기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 적잖게 놀랐는데 그게 남편의 나이가 많아서 그런것이 아니라 사귄지 일년밖에 안되었는데 결혼을 한다고 해서 주위에서 놀랐다고 하더라. 우리나라에서는 선보고 세번 만나면 상견례 이야기가 오간다는 말도 있어서 일년이나 사귀었는데 결혼하는게 뭐 그리 놀랄 일인가 싶었는데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스웨덴에서는 만나서 10년넘게 동거를 하며 애를 두셋 낳은 뒤 결혼이나 한번 해볼까 하며 결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 친구의 말이 아니었어도 스웨덴 사람들은 결혼을 잘 안하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들어서 나는 북유럽 사람들은 원래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노르웨이는 참 아닌것 같다.


옆 나라 덴마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노르웨이 사람들은 스웨덴 사람들과 달리 ‘결혼하는’ 사람들이고 또 결혼을 매우 일찍 하는 사람들인것 같다. 최근에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하는 경우가 줄고 있다고는 하나 노르웨이 사람들이 우스겟소리로 하는 말이 자기들은 대학 졸업하고 나면 바로 결혼하고 집 사고 애 낳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 동료들 중에도 왠지 나와 나이가 비슷한 것 같았는데 청소년이 된 아이들이 있는 사람들도 몇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노르웨이는 다른 북유럽국가들에 비해 조금 더 종교적이고 보수적이어서 그런 것 같다. 보수적이라고 해봐야 한국이나 미국에 비하면 훨씬 개방적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노르웨이에서는 결혼을 하던 동거를 하던 파트너로 등록을 한 경우에는 그 권리가 거의 비슷하다. 파트너 등록은 일년 이상 같은 주소지에서 거주한 경우 신청을 할 수 있는데 파트너여도 결혼했다 이혼을 하는 경우여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재산 분할은 각 파트너가 반반씩이라고 한다.


하여간 결혼은 이렇게 잘들 하지만 들은바에 의하면 노르웨이에서는 결혼한 두 커플중 한커플은 이혼을 한다고 한다. 좀 놀랍다. 진짜 이렇게 이혼을 많이 하나 싶어서 찾아봤더니 진짜로 그렇다. 노르웨이 통계청 (SSB)에서 발행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약 22천쌍이 결혼을 했고 만건의 별거가 등록되었으며 98백건의 이혼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신문에서 보니 많아 낮아져서 이정도라고 하더라. 정확하게 50% 이혼률은 아니어도 참 높긴 높은것 같다.



뭐 사랑에 빠졌다가 더이상 사랑하지 않아 헤어지는 일이야 언제 어디에서나 있는 일이지만 비슷비슷한 문화인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이 재미난 것 같다.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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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이 점점 흉흉해져가는 요즘 세상에 인종차별은 큰 화두가 아닌가 싶다. 점점 자국민 이기주의로 세계 정세가 기울어가고 있으니 이주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는 큰 문제일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10년을 살다 노르웨이에 왔다. 미국에서는 플로리다, 뉴멕시코, 콜로라도 세 주에 살아봤다. 그런데 10년 생활동안 딱히 대놓고 인종 차별을 당해본적은 뉴멕시코주에 살때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나는 거의 대부분의 미국인들도 내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줄 알 정도로 영어를 잘한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박사과정을 하고 그 뒤에는 회사를 다닐 정도의 삶을 살았으니 중산층 정도의 생활을 했고 같이 어울리던 사람들도 교육 수준이 높은 중산층 사람들이었기에 직접적인 인종차별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뉴멕시코 주에 살때에는 매우 특이한 인종 차별을 받았는데 바로 멕시코 이주민들에 의한 차별이었다. 뉴멕시코에서는 국경지역 라스크루세스라는 도시에서 일년정도를 살았는데 그곳 인구의 대부분은 멕시코계 이주민이다.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백인들에게는 매우 친절하나 동양인 여성에게는 매우 불친절했는데 같은 유색인종인 젊은 동양인 여자가 자기들보다 교육 수준도 높고 연봉도 높은데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적 어떤분께서 미국에는 두가지 피부색만이 존재한다는 말씀을 듣고 큰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 두가지는 바로 백인과 유색인이란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동양인은 흑인보다는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각한 것 자체가 나 역시 인종주의자였다는 것이다. 요즘 미국 뉴스를 듣다 보면 미국 상황이 참 좋지 않아 보이더라. 물론 직접적인 차별은 여전히 흑인, 라틴계, 아랍계 사람들을 향해 있지만 모든 유색인들 혹은 피부색을 떠나 모든 이민자들에게 차별이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하도 노르웨이 이민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다보니 노르웨이에는 인종차별이 얼마나 있나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는 노르웨이에 온지 4년정도가 되었지만 직접적으로 인종 차별을 겪은 적은 없다. 나는 노르웨이어를 못하기에 이런면에서 불친절함을 겪은 적은 있다. 또 뉴멕시코에서 겪었던 것처럼 유색인종 이민자가 되려 불친절함을 보이는 경우도 겪은적이 있다. 하지만 크게 인종 차별을 겪지 않은 이유는 앞서 말한대로 나는 고학력의 중산층 사람이고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 역시 비슷한 사람들이라 그렇다고 생각한다. 또한 노르웨이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한다고 믿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차별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한다고들 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차별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믿을 뿐 차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단지 사회 전반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벌써 훌륭하다고 본다.


예전에는 노르웨이에는 인종차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일하는 분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료분중 본인과 배우자분은 토종 노르웨이인이나 세명의 자녀를 해외에서 입양해서 키우시는 분이 있다. 함께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분께서 이런말씀을 하셨다. ‘당신은 그래도 동양인이라 아마 노르웨이에 인종 차별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할거에요. 아마 직접적으로 당한적이 없을테니까요. 그런데 노르웨이는 요즘 심각한 현상을 겪고 있어요.’


주위에 자녀를 입양해 키우시는 분들이 적지 않게 있는데 대부분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자녀를 데려오는 반면 이분은 세 자녀를 모두 콜롬비아에서 입양해왔다고 한다. 지금은 세명 모두 청년이 되어 14-18사이라고 하시더라. 아들 둘에 딸이 하나이신데 이분은 항상 막내 아들 이야기만 하신다. 세명의 자녀중 막내 아들은 피부 색이 유난히 검어서 어떻게 보면 아랍인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이는 아주 어렸을 적 부터 가게에 들어가면 가게 주인이 아이 뒤를 따라다니며 감시를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피부가 검기 때문에 그런 의심을 계속해서 받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더더욱 말도 안되는 경우를 겪었는데 작년 9월 베르겐에서 열린 세계 사이클링 대회 도중 혼자 길을 배회하는 이 친구를 경찰이 아무 이유 없이 불러 세워 신분증 조사를 하겠다며 겁을 줬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이 일이 매우 커져서 신문사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신문 기사에도 나오는 사태까지 발생했다고 하시더라.


정말 내 동료분 말씀대로 노르웨이는 알게 모르게 인종차별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인것 같다. 베르겐만해도 이게 조금 덜한데 오슬로에 사는 친구 말에 의하면 오슬로는 동네에 따라 어떤 동네는 유색인종만이 살고 있으며 부모들이 유색인종이 많은 학교에 아이를 다니지 못하게 하려고 이사까지 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어떤 학교에 가면 90% 이상이 난민 출신의 유색인종인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믿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노르웨이인들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인상을 찌푸리며 이래서는 안된다고 말을 하지만 정작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현상이다.


앞서 말한대로 동양인은 노르웨이에서 차별을 크게 받지 않는다. 노르웨이어를 잘 할 경우 아마 거의 차별을 안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르웨이에는 어린시절 동양에서 입양되어 온 사람들도 꽤 많아 아마 더더욱 그런것 같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면 참 웃긴것 같다. 내가 가본 얼마 안되는 나라 중 인종차별이 매우 심한 나라 중 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기 때문이다. (가본 나라 중 진짜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나라는 아마도 호주가 아니었나 싶다. 아주 공공연하게 원주민을 억압하는 호주 백인들... ㅎㄷㄷ) 아마도 ‘거기 가면 인종 차별 심한가요’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는 난민들이 살지 않는 백인 동네에 살겠다고 할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인종차별이라는 것 자체가 이런 이기적인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인종차별을 당할것은 걱정하면서 정작 훗날에는 자기 자신이 이민자를 차별하는 현상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흔한 현상이다. 그러니 우리는 ‘거기는 인종 차별이 심한가요’ 이런 질문을 해대기 전에 다시 한번 내 자신을 되돌아 봐야할 것 같다. 나는 과연 인종주의자가 아닌가.


여담으로 동료분의 아들은 하도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언젠가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얼마 전 기회가 되어 만나게 되었다. 성악에 재능이 뛰어나 지금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뛰어난 청소년 성악가로 선발되어 특수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한다. 차별속에서 억압받으며 자란것은 아닐까 하는 내 선입견과는 전혀 달리 영국식 억양으로 영어를 하며 (어떻게 노르웨이에서 나고 자란 친구가 영국 억양으로 영어를 하냐고 했더니 외국어에 타고난 소질이 있다고 한다 ㅎㅎㅎ) 유머러스한 무대 매너를 선보이며 ‘영원한 사랑’에 대한 오페라속 노래를 부르는 그는 정말 멋지고 매력적인 청년이었다.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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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살기 전에는 수직적인 인간관계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우리말은 존댓말이 있어서 배우기가 어렵다던가 서양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를 이름으로 부른다라던가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던가. 항상 책이나 미디어에는 이런것들을 강조하지 않나. 그런데 항상 그렇듯 이런 선입견이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영어에서는 존댓말이 많이 사라졌지만 독일어에는 존댓말이 엄연히 존재한다. 다만 이것이 나이와 상관 없이 인간관계에서 거리감을 나타낼 때 쓰일 뿐. 예를 들면 독일어에서 ‘너’를 지칭하는 단어는 Sie(존칭)Du인데 주어가 어떤것이 되느냐에 따라 동사의 모양새도 다르게 됨으로 정말 확실하게 존칭이 맞다. 독일에서 몇년 살았던 친구가 하는 말이 자신이 독일어를 잘 못할때 길을 물어보거나 할 때 사람들에게 Du라고 지칭을 하다가 지적을 여러번 받았다는 것이다. 너랑 나랑은 친한사이도 아닌데 왜 자기를 Du라고 부르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ㅎㅎㅎ 하지만 우리가 들었던 대로 친한사이가 되는 즉시 호칭을 바꿔도 된다고 하더라. 마치 우리나라에서 ‘우리 사귄지 오늘 1일’ 이런거랑 비슷하다. 하여간 처음으로 파파의 부모님을 만났을 때 나는 대체 호칭을 어떻게 해야하나가 궁금했는데 당연히 그냥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시부모님을 이름으로 부르는 막되먹은 며느리 ㅎㅎㅎ 그래도 나는 한국사람인지라 그냥 이름을 부르는 것은 너무나 어색해서 mutti(엄마)paps(아빠)로 부르고 있다.


파파가 하는 말이 독일에서는 의사, 박사, 대학교수는 매우 대접받는 사람들인지라 박사를 받으면 심지어는 공식적으로 자기 이름에다가 Dr.라는 호칭을 붙일수도 있다고 하더라. 물론 자신도 박사를 받자마자 당장 그렇게 했다며 여권을 보여주는데 여권에 Dr. ㅇㅇㅇ 이라고 적혀 있다. 심지어는 박사의 부인 역시 이름을 Frau Dr. ㅇㅇㅇ로 부를 수 있다더라. 그래서 이렇게 되면 뭐가 좋냐고 했더니 누군가가 (경찰이나 관공서 직원 등등) 자신에게 무례하게 대할 경우 ‘나를 full name으로 불러주시오’라고 하면 그렇게 해야하는데 그러면 무례하게 자신에게 막대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을 닥터 ㅇㅇㅇ라고 불러야 한다고. ㅎㅎ


언뜻 봐서는 독일과 비슷할것 같지만 노르웨이는 독일과는 다르게 사회구조나 인간관계가 매우 수평적이다. 노르웨이어에서는 존댓말을 (그 흔적이 남아있기는 하나) 거의 쓰지 않는다. 노르웨이 문화를 소개하는 책자에 보면 노르웨이에서는 심지어는 왕에게도 인사할 때 그냥 ‘하이’라고 한다고 나와있다. 그냥 우스겟소리로 하는 말인지라 노르웨이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그렇게 할 수도 있긴 있겠지만 진짜로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고 ㅎㅎㅎ


Mondå Forlag: Bridging cultures | Norway | By Julien S. Bourrelle


한번은 회사에서 리더쉽 워크샵이 열려 참가를 했는데 점심시간에 진행자분 옆에 앉게 되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분은 가끔씩 이렇게 리더쉽 워크샵에서 강의를 하지만 그것은 그냥 취미로 하는 것이고 원래는 수학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은퇴를 하고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그럼 학생들이 당신을 닥터 ㅇㅇㅇ라고 부르나요?’라고 물어봤더니 그분이 놀라며 하시는 말씀이 노르웨이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을 이름으로 부른다는게 아닌가!?! 그래서 아무리 박사건 뭐건 그냥 이름으로 부른다고 하시더라. 놀랍다...왕에게 하이라고 인사를 하는 것은 그냥 농담이라고 해도 학교에서 학생들이 선생님을 그냥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직접적인 것이라 더 놀랍더라. 그런데 이와 비슷한 경험을 직접 하게 된 곳이 병원이었다. 의사들이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닥터 ㅇㅇㅇ이라고 하지 않고 이름으로 한다는 거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당신을 진료하게 될 Lars에요.’ 이런식인거다. 처음에는 이 의사가 너무 젊은 사람이라 그런가 싶었는데 그냥 항상 이렇더라.


언어와 사고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라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도 바뀌지 않나. 그러니 언어가 이렇게 수평적이라는 것은 사고방식도 그렇게 바뀌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노르웨이에서는 언어나 호칭만 그런것이 아니고 거의 모든것이 수평적이어서 인간관계뿐 아니라 직급이나 월급등등도 거의 수평적이다. 그래서 노르웨이에서는 ‘내가 누군지 알아?’이런 갑질이 통하지 않을것 같다. 왕에게도 수상에게도 ‘하이’라고 인사하고 수상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고 왕도 기차를 타고 스키를 타러가는 마당에 갑질이라는 것이 통할리가 있겠나. 당신이 누구이던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이던 어느 재벌의 딸이던 그게 무슨 상관인가 결국엔 다 같은 인간인데 말이다.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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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 독일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름을 불러주면 들어가 진료를 받을 수 있거든요. 그때 "Doktor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박사라는 타이틀은 대학에서만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병원에서도 그렇게 부르는 것을 보고요.

몇년 전 우리가 노르웨이에 온 첫 해, 동료분의 추천으로 농장에서 양고기를 직구하게 된 이후 해마다 같은 농장에서 양고기를 직구하고 있다. 농장이라고 하지만 상업적으로 하는 농장이 아니고 노르웨이식 취미농장이라 일년에 딱 한번 직판을 하고 살때는 한마리를 다 사야한다. 한마리라고 해봐야 이곳의 양고기는 노르웨이 서부 특산 야생양이어서 크기가 매우 작아 10킬로그램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직구라고 해도 엄청나게 싼것은 아니어서 슈퍼에서 파는 가격과 비슷하지만 이 농장의 양은 일년 내내 자연보존지역에서 자란 방사 야생양으로 슈퍼에서 파는 양고기와는 맛이 다르고 너무나 확실하게 유기농 고기여서 재미삼아 구매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같은 지역의 농부들을 지지하는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ㅎㅎ


이렇게 우리는 아는 사람을 통해 하는 직구에 재미를 붙였는데 하루는 회식을 하고 집에 늦게 왔더니 부엌이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이게 대체 뭐냐고 했더니 파파가 자신의 동료분이 자신의 처남이 사냥을 갔다가 사슴을 몇마리 잡아서 자신이 한마리를 샀는데 그중 반마리를 파파에게 팔았다는 것이다 ㅋㅋㅋ 양고기 10킬로그램을 직구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사슴을 20킬로나 샀다고 한다. 그런데 동료분이 친절하게도 집까지 가져다주신 것은 물론 부위별로 해체해서 보관하는 방법까지 시범을 보이고 가셨다고 한다.



이렇게 졸지에 다량의 고기가 냉동고에 쌓이는 바람에 우리는 사슴고기를 이용한 여러가지 레시피를 연구하게 되었다. 야생고기는 누린내가 많이 날 것 같지만 싱싱한 고기는 기름을 떼어내면 누린내가 거의 나지 않고 특유의 풍미가 매우 좋다. 스테이크도 몇번 해보고, 스튜를 만드는 부위로는 굴라쉬를 몇번 만들었고, 남은 잡부위로는 소세지를 만들어봤다. 예전에 친구집에서 사슴고기로 소세지를 한번 만들어본 적이 있어서 우리도 집에서 한번 해보고 싶어 고기 가는 기계를 사서 한번 해봤다. 파파가 욕심을 내느라 힘줄을 너무 많아 섞는 바람에 약간 질긴 부위가 있기도 했지만 이렇게 소세지를 만들어보니 너무 쉽고 맛있어서 앞으로는 아마도 슈퍼에서 소세지를 사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동료분들께 했더니 한분께서 나더러 킹크랩을 좋아하냐며 하시는 말씀이 자신이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노르웨이 북부에서 킹크랩을 잡으시는데 일년에 한번씩 베르겐에 킹크랩을 보내주신다는게 아닌가. 한번 살때 10킬로그램 이상을 주문해야하는데 슈퍼에서 파는 것보다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파신다며 내가 관심이 있으면 자신이 내년에 주문할 때 내것도 주문을 해주신단다 ㅎㅎㅎ 그래서 내년에는 양고기, 사슴고기에 더불어 킹크랩까지 직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통해 많은 것이 이루어지는 진정한 노르웨이 스타일의 삶이다. ㅎㅎ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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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술에는 재능이 없지만 나름 공작생활을 즐기는 사람이다. 미국에 살적에는 도예를 배워서 10년간 도자기를 열심히 만들었는데 노르웨이에 온 뒤로는 도예실을 찾지 못해 도자기는 포기했다. 노르웨이에 온 뒤 나의 창작혼을 불태우고 있는 취미생활은 바로 뜨게질이다. 노르웨이 여자 치고 손수 뜬 양말이나 모자가 없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무릇 진정한 노르웨이인이라면 매 겨울 오두막에서 길고 긴 밤을 뜨게질로 보내는 것이라고.


양말을 직접 만들었다는 친구를 따라 나도 뜨게질에 입문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만들어본 양말은 정말 볼품없는 모양이었는데 이것도 조금만 요령을 알면 나름 잘 되더라. 내가 만든 물건을 직접 쓸 수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것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나라에는 너도나도 다들 뜨게질 전문가인지라 하다가 잘 안되면 회사에 들고가서 물어보고 직접 과외를 받을 수 있어서 정말 실력이 빠르게 느는 것 같다.


뜨게질에 입문하고 가장 처음으로 만든 양말. 매우 허접하다 ㅋㅋㅋ


얼마 전 만든 목도리. 일년만에 실력이 엄청나게 향상되었다 ㅎㅎ


내가 이렇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니 주위 사람들도 너도나도 가르쳐주고 싶어 하는 것이 재미있다. 얼마 전에는 별로 친하지 않은 회사 동료분께 질문을 한것을 계기로 하여 그분의 뜨게질 클럽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었다. ㅎㅎ 그 뜨게질 클럽이라는 것이 별것 아닌 회사 동료들 몇명이 모여 뜨게질을 하며 수다를 떠는 클럽인데 사실 뜨게질은 별로 안하고 같이 저녁먹고 와인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이 좁은 인간관계 안에서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과!) 그래도 나름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좋았나 모르겠다. ㅋㅋㅋ


얼마 전에는 농장에 갔다가 그곳에서 키우는 양모로 만든 털실을 패턴과 함께 팔길래 스웨터를 한번 만들어보려고 한다. 올 겨울 휴가에서는 쉬는 것 이외에 스웨터가 목표다 ㅎㅎㅎ 처음 만들어보는 스웨터가 제대로 잘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ㅋㅋ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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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원래 캠핑가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노르웨이에 온 뒤로는 일이 너무 바쁘기도 했고 항상 날씨가 안좋다보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캠핑을 많이 가지 못했다. 크게 마음을 먹고 준비를 다 해놔도 폭우가 쏟아지면 어찌나 가기가 싫어지던지 ㅎㅎㅎ


캠핑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 시부모님도 마찬가지여서 나의 시부모님은 은퇴를 하심과 동시에 구입하신 커다란 멀티밴을 캠핑카로 개조하셔 정말 자주 캠핑을 가신다. 이번 여름에도 어김없이 캠핑카로 노르웨이에 오셨는데 5-6주정도 캠핑카로 노르웨이 여기저기를 다니시고 시간 없으시다며 우리집엔 사나흘밖에 안머무르신다 ㅎㅎㅎ


이번 여름에 오셨을 때에는 손재주 좋으신 아버님이 파파와 함께 뚝딱뚝딱 뭔가를 만드셨는데 바로 차 안에서 잠을 잘 수 있는 카캠핑용 구조물을 만들어주신 것. 우리는 베르겐 시내에 살기에 차가 필요 없어서 차를 사지 않고 카쉐어를 한다. 카쉐어는 차 크기에 따라 값이 다른데 저렴한 소형 스테이션 웨건의 뒷좌석을 접은 뒤 거기에서 잠을 잘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차가 우리차가 아니기에 접었다가 폈다 하며 필요하면 사용할수도 있고 아니면 창고에 보관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래서 8월 말의 어느 주말에 당장 시험해보기로 했다. 베르겐에서 가깝지만 항상 말만 하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Hardanger vidda에 가게 되었다. Hardanger vidda는 베르겐에서는 차로 두시간 반정도가 걸리는데 아름다운 Hardanger 피요르드를 지나 조금 더 고산지대로 올라가면 나오는 고원이다. 이곳은 아직도 빙하가 있어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금요일 오후, 일을 조금 일찍 마치고 집에 와서 필요한 것들을 아무렇게나 구겨넣고 출발을 했다. 필요한 먹을거리는 가다가 슈퍼마켓에 들러 잔뜩 샀다. 보통 우리집에서 여행 계획은 내가 다 세우는데 이번엔 파파가 매우 꼼꼼하게 준비를 했다. 카캠핑을 하려면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울수가 있어야 하는데 (고속도로 바로 옆에 차를 세우고 캠핑을 한적도 한번 있었는데 여간 불편한것이 아니다) 그 장소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파파는 이틀 저녁을 구글맵을 들여다보며 어디에 차를 세우면 좋을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ㅎㅎ 그렇게 많은 노력덕분에 미리 지도에서 점찍어놓은 장소에 도착하니 정말 캠핑을 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작은 자갈길을 3-4킬로미터정도 따라가니 다른 차나 캠핑객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곳이 나왔다. 그 고요한 곳의 경치는 어찌나 아름답던지.




늦은 저녁이 되니 날이 꽤 어두워진데다가 추적추적 비도 와 우리는 저녁을 먹고 바로 차안으로 들어갔다. 밖은 춥고 비가오는데 파파가 차 안에 마련해놓은 잠자리는 꽤 아늑했다. 엄청 좁아서 더스티와 자리싸움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과는 달리 자리가 꽤 넉넉해서 우리가 다리를 쭉뻗고 누워도 더스티가 불편하지 않게 누울 수 있어 우리는 온가족이 작은 스테이션웨건 안에서 아늑한 밤을 보내게 되었다. 단 아직 캠핑이 아주 익숙하지 않은 더스티가 밤에 밖에서 나는 소리에 짖어대서 두번정도 깜짝 놀라 잠에서 깬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밤에는 비가 조금씩 계속 내린것 같았는데 일어나보니 정말 맑은 하늘에 밤에 어두워서 잘 안보이던 경치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우리 셋만 캠핑을 하고 있었다니 정말 환상적이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까지 싸서 하이킹에 나섰다.


사진에는 잘 안나왔지만 이곳은 고산 툰드라 지역으로 나무가 많지 않고 식생이 낮았고 멀리에는 빙하가 멋지게 보였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갔는데 지도에는 없는 샛길이 많아 길을 찾기가 조금 힘들었다. 원래는 10킬로미터정도 하이킹을 하려고 했는데 중간에 내가 저쪽에 있는 호수까지 갔다가 가자고 하는 바람에 계획이 틀어져버리고 말았다. ㅠㅡㅠ 호수까지 간김에 그냥 호수를 둘러서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정말 잘못된 생각이었다. 지도에 없는 길이 있을줄 알았건만 길은 나올듯 나올듯 하면서도 나오지 않았고 푹신푹신한 툰드라를 등산로도 없이 걷자니 정말 너무나 힘들었다. 보통 한시간에 4킬로미터는 거뜬히 걷는 우리였건만 등산로가 없으니 한시간에 2킬로미터를 걷는것도 너무나 힘들어서 호수를 둘러가는데 세시간이 넘게 걸렸고 반대쪽에 도착하고나니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호수 반대쪽에서 우리 캠프까지 가려면 고속도로를 4킬로미터정도 걸어 가야했는데 도저히 그렇게 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갓길도 없는 고속도로를 더스티와 어떻게 걸어가나 ㅠㅡㅠ 힘들어 죽겠는데 너무 절망적이었던 찰나 차가 한대 나타났다. 베르겐으로 가는중이라 우리 차가 있는 곳과는 반대방향이었지만 우리가 정중히 부탁을 하니 태워주시겠다는 것이 아닌가. ...진짜 너무 다행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다시 캠프에 도착한 우리는 ‘앞으로는 절대 지도에 없는 길로는 가지 말자’라는 다짐을 했다. ㅎㅎ 그렇게 고생을 한 뒤의 저녁은 당연히 파파의 캠핑누들 레시피로 만든 파스타였다 ㅋㅋ 당시엔 너무나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래도 추억이 될만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다음날은 조금 쉬운 코스로 준비했다며 캠프를 접고 매우 유명한 Vøringsfossen이라는 큰 폭포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었기에 시간도 넉넉했고 아침에 날씨도 정말 좋아서 하이킹을 하기에 정말 좋았다. 하당거지방에는 아름다운 폭포가 매우 많지만 Vøringsfossen은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폭포여서 ‘Hardanger fjord in a Nutshell’ 투어를 하면 들르는 곳이고 다른 투어들도 다들 그곳을 들르는 것 같더라. 하이킹을 하지 않고도 폭포를 구경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정말 많았다. 우리는 하이킹을 하고 폭포를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에 갔다.


하이킹 책에 나와있는 코스를 가기로 했는데 처음엔 괜찮았는데 조금 가다보니 마치 산사태가 나서 돌무더기가 쓸려내려온 것 같은 곳이 여러곳 나왔다. 너무 위험한것 아닌가 ㅠㅡㅠ 아마도 책이 발간되고 난 뒤 산사태가 여러번 난 모양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간 흔적이 많아 우리도 그냥 갔는데 나중에 보니 안내문이 붙어있는데 우리가 간 코스보다 훨씬 쉬운 코스가 있었다. 갈때엔 두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쉬운길로 돌아오니 30분밖에 안걸렸다는 ㅎㅎ 날씨도 좋은데 폭포 아래에서 바라보는 폭포는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르겠다. 자연경관이 너무나 거대해 정말 경의로울 따름이었고 이런 모습을 사진으로 다 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눈은 카메라 렌즈에 비해 얼마나 훌륭한가. 내 눈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장관을 다 담을 수 있는데 카메라 속의 모습은 알수없는 회색의 바위들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Eidsfjord라는 아름다운 작은 마을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었다. 이렇게 좋은데 왜 여지껏 게으르게 이핑계 저핑계를 대며 집에만 있었는지. 노르웨이 속담에 이런말이 있다고 한다. ‘궂은 날씨란 없다. 옷을 잘못 입은 사람만 있을뿐.’ 정말 노르웨이의 궂은 날씨는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조금 준비를 하니 궂은 날씨에도 밖에서 자연을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말이다.




오후에 집에 도착하고 보니 그 전날 비가 아주 많이 왔는지 곳곳에 나뭇잎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이웃분께 물어보니 비가 너무 많이와서 거리에 물이 발목까지 찼다고 하더라 ㅋㅋㅋ 정말로 베르겐을 조금만 벗어나도 날씨가 좋구나. ㅎㅎ 이 여행을 다녀온 뒤 한번 더 가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베르겐에서 사이클 대회를 한다며 도로를 다 막아버리는 바람에 가지 못하고 그 뒤로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는 바람에 내년을 기약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제 자신감이 붙은 우리는 내년엔 어딜 가볼까 즐거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조금 더 노르웨이에서 즐겁게 사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 같다.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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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멋진 풍경이네요.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