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작년 봄에 했던 대로 긴 부활절 휴가를 맞아 또 다시 일주일간 프랑스 남부를 찾았다.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매번 같은 곳을 가고 싶어하는 파파와 달리 나는 항상 다른 곳에 가고 싶다. 작년 봄에는 니스와 가까운 생쟈네에 갔었는데 이번에는 니스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프로방스 지방엘 가보고 싶어 고르고 고르고 또 골라 프로방스 지방에서도 루베롱(Luberon)이라는 지역에 가보기로 했다. 프로방스는 꽤 넓은 지방인데다가 좋다는 곳이 워낙에 하도 많아 어디에 갈지 고르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딱 우리 입맛에 맞을 만한 곳을 골라줄만한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였다. 트립어드바이저 같은 곳을 정말 오랜시간 열심히 들여다 봤는데 아무리 여행 고수들이 모인 곳이라 한들 사람들마다 취향이 다들 다른지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프로방스는 라벤더를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해서 언젠가 라벤더가 가득한 언덕을 찍은 사진을 본 후로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라벤더가 피는 시즌은 6월부터라고 하더라. 4월에도 꽃이 조금이라도 피지 않았을까 하는 것은 정말 나의 큰 착각이었다. 이렇게 또 한번 나의 기대는 무너져버리고... 이른 봄 프로방스의 언덕은 황량했고 미스트랄이라고 불리는 흙먼지 회오리 바람이 창문이 덜컥거릴 정도로 무섭게 불어댔다. 제목만 보면 뭔가 너무나 낭만적이게 들리지만 별로 그렇지 않았다. ㅎㅎㅎ 그래도 이런 것 또한 추억이 아닌가 싶다.


구글에서 프로방스를 검색하면 나오는 사진들 중 하나. 이런 사진을 보고 꽂혀서 갔건만...


4월의 프로방스는 이런 모습이었다.


내가 정한 숙소는 Lioux(리우)라는 곳으로 Rousillon(루시옹)이라는 마을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내 예상과는 달리 리우는 마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작은 마을이었다. 집 주인아저씨 말로는 리우는 그 흔한 교회하나 없는 곳이어서 빵집 같은건 기대도 하지 말라고 하실 정도였다. 리우에서 그나마 유명한 것은 마을 바로 앞에 있는 멋진 절벽과 유명 디자이너 삐에르 가르뎅이 언젠가 구매하고 한번도 찾지 않는 작은 성이라고 ㅎㅎㅎ 조용하고 경치가 매우 좋은 마을인 것은 좋았지만 근처에 식당이나 빵집이 없는 것은 좀 불편했다.




그래도 근처 마을 Apt(압트)라는 곳에서 일요일에 큰 장이 섰는데 이게 나에게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관광객을 위한 마켓이기도 했지만 주민들이 더 많이 오는 마켓으로 이런게 프로방스의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빵이랑 소세지를 사고 광장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맥주를 한잔 했는데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추억이다. 라벤더 가지로 만든 바구니, 모자, 라벤더 향 비누. 너무 예뻤는데 왜 안샀지 너무 후회가 막심하다. ㅠㅡㅠ 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별로 비싸지도 않았는데 ㅋㅋㅋ 필요는 없어도 하나쯤 사주는게 여행지에서의 소비인데 말이다. 그나마 막 문을 닫고 있는 노점에서 프랑스산 면으로 만들었다는 담뇨를 하나 샀다.





한날은 집에서 걸어서 근처 마을 루시옹에 갔다. 루시옹은 알고보니 여러 여행잡지들에 ‘숨겨진 작은 보석같은 마을’이런 제목으로 많이 소개되는 곳이라고 한다. 황토가 생산되는 곳 중 하나로 붉은 흙으로 만들어진 중세 마을이고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관광 시즌이 아니라고 생각했음에도 관광버스로 관광객이 많이들 와서 놀랐다. 이게 프로방스의 유명세구나 싶더라. 볼게 별로 없는 봄에도 이런 정도이면 여름엔 정말 끝장나겠다 싶었다. ㅎㅎㅎ






한날은 근처에 있는 Le village de Bories(보릿고개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름의 보리마을)라는 곳에 갔다. 중세시대 성 밖에 살던 가난한 농부들이 척박한 밭을 갈면서 주워 모은 납작한 돌을 쌓아 성 밖에 건물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라고 한다. 보리 마을은 옛날 모습 그대로 건물을 재건해 만든 마을인데 이런 건물을 지을때 실재로 돌을 하나하나 망치로 깨서 납작하게 만든 뒤 붙힘 없이 쌓기만 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이런 형태의 건축물은 이 지방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지중해 전역에서 볼 수 있다. 작지만 너무나 멋진 곳으로 한번 가볼만 하다.
궁금하신 분은 홈페이지로 https://en.levillagedesbories.com/



보리 마을에 갔다가 잠깐 Gordes(고르드)라는 근처 성채마을에 들렀다. 고르드는 매우 아름다운 마을로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는 고르드에서는 큰 재미를 못봤다. 겉모습은 매우 아름다웠지만 별로 따뜻하지 않은 인심, 어딜가나 노르웨이만큼 비싼 가격, 명품숍들이 즐비한 거리, 미국인 관광객이 즐비한 식당들 (미국인 관광객을 꽤 많이 봤는데 미국에서까지 관광객이 올 정도이니 얼마나 유명한 곳이겠나 싶었다). 고르드는 부유한 외국인들이 와서 비싼 호텔에서 묵으며 명품 쇼핑을 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샌드위치 가게에서 맥주 한잔만을 마시고 집으로 빨리 돌아왔다. 예전에도 몇번 이런 경우를 겪은적이 있었는데 이런 마을은 우리가 좋아하는 마을은 아니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여행가서 많은 것을 했고 (블로그에는 쓰지 않았으나 진짜 맛있는 것을 많이 먹기는 했다) 즐거운 추억도 많았는데 왠지 이번 프로방스 여행은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 여행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뭔가 딱 기대했던 것에 맞는 곳이 아니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우리 부부의 여행지 공식을 한번 세워봤다. ㅎㅎㅎ
- 햇살이 좋고 따뜻하면서 먹거리와 마실거리가 많은 곳
- 될수 있으면 베르겐에서 직항으로 갈 수 있는 곳 혹은 항공권이 너무 비싸지 않고 오래 비행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 치안이 좋고 쉴 수 있는 곳
- 비자가 없이도 갈 수 있는 곳
- 공항에서 차로 두시간 이상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숙소를 잡음
- 일주일정도 가면 한 숙소에만 머물음
- 삼박 이상 가면 대도시는 싫음
- 너무 유명해서 사람 많은 곳은 싫음
- 단체 관광객이 버스로 오는 관광지에는 절대 숙소를 잡지 않음
- 숙소에서 차를 타고 가지 않고도 하이킹을 할 수 있는 루트가 여러곳 있는 곳 좋음
- 하루 정도는 한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음
- 사람들이 마주치면 인사를 할 정도의 인심 좋은 작은 마을에 숙소를 잡는 것이 좋음
- 작지만 마을 안에 정육점, 빵집, 걸어서 갈 수 있는 식당이나 술집 있는 곳
- 따스한 햇볕 아래서 아침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발코니나 마당이 집에서 바로 연결된 숙소
- 근처 장이 서는 곳이 좋음


생각해보니 우리의 마음에 꼭 드는 그런 곳이 정말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작년에 생쟈네가 너무나 우연히 이것을 모두 충족시키는 곳이었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다.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 남부에 대해 기대치가 높아진게 아닌가 싶다. 정말 그냥 파파 말대로 생쟈네에 매년 가는게 좋은걸까 싶기도 하고.


이런 곳 아시는 분 추천 부탁드려요! ㅎㅎㅎ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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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달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병가라는 것을 써봤다. 우리 회사는 근무 시간이 매우 자유로운데다가 조직적으로 매우 수평적인 곳이어서 내 위로 몇명 없기에 여태껏 몸이 안좋으면 딱히 어디다 보고 할 일 없이 그냥 회사에 안가고 집에서 일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로 병이 크게 난지라 병가를 한번 내보기로 했다. 상태가 안좋은 상황에서 회사에 가서 우리 부서 HR메니저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다른 회사들 중에는 3일 이상 쉬고 나면 공식적으로 병가를 내야하는 곳도 있는데 우리 회사같은 경우에는 이 기간이 8일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의사의 소견서 없이도 아프면 그냥 집에서 8일까지 쉬어도 된다고 한다. 그리고 더 쉬어야하는 경우에는 병원에 가서 의사의 소견서를 받아오면 공식적으로 병가를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일단은 진짜로 아파서 간거라 의사가 별 말 없이 일주일 병가 신청을 해줬다. 일주일을 쉬어보고 그래도 계속 안좋으면 자기한테 메시지를 보내던지 다시 병원에 오라고 하더라. 그런데 특이한점이 있다면 이것을 온라인으로 다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의사가 직접 노르웨이 노동복지청 홈페이지에 등록을 하고 그러면 이메일로 나에게 메시지가 오는데 내가 직접 온라인에 접속해서 이것저것 질문에 답을 한 뒤 회사에서 담당자의 이름을 남기면 자동으로 그 사람에게 전달이 되어 결제를 받으면 끝이다. 소견서 없이 8, 병가 일주일 이렇게 이주 조금 넘게 쉬고나니 너무나 무료해서 다시 회사에 나가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좀 안좋다 싶으면 하루정도 그냥 집에서 쉬곤하지만 3주동안 병이나 집에서 쉬는건 나같은 사람은 정말 못할짓이었다 ㅎㅎㅎ


이번 기회에 노르웨이 노동복지청 홈페이지에서 병가에 대해 읽어봤는데 노르웨이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의 경우 52주까지 병가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처음 16일은 회사에서 금전적으로 병가를 지원해주게 되어있고 그 이후의 기간은 노동복지청에서 지원을 해줘 병가를 낸 동안에도 월급을 100%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파파의 말에 의하면 노르웨이만 이런것이 아니고 독일과 같은 나라 역시 회사에서 병가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도록 되어있는데 그 이유는 직원들이 번아웃증후군에 걸리는 것보다 단기간 병가를 내고 완쾌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회사 입장에서 값싸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직원들이 양심적으로 이런것을 이용할 때 가능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한국사람이라면 아마도 ‘죽을만큼 아프더라도 학교/회사에 가서 죽어라’이런 말을 살면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고등학교때 선생들께 정말 자주 듣던 말이다. 아프면 아플 수 있고 쉴 수 있는 것도 내 권리인데 이런것을 사회적으로 보장해주는 것도 ‘인권존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세한 것이 궁금하신분은 여기로

https://www.nav.no/en/Home/Benefits+and+services/Relatert+informasjon/sickness-benefits-for-employees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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