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 나는 워크샵에 참가하러 헬싱키에 사흘 출장을 다녀왔다. 나는 본의 아니게 출장을 자주 다닌다. 예전엔 출장을 가면 주말을 끼고 여행을 하기도 해서 출장이 신나고 좋았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혼자 어디 가는게 별로 즐겁지 않더라. 그래서 일이 끝나면 구경이고 뭐고 그냥 즉각 집에 오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워크샵을 하려면 좀 따뜻하고 이국적인 리스본같은 곳에서 하지 헬싱키가 뭐람...멋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ㅎㅎㅎ


짐을 싸면서 워크샵 프로그램을 보는데 둘째날 프로그램에 참 웃긴게 있었다.



저녁식사와 사우나라니...핀란드 사람들이 사우나 좋아하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워크샵 디너에 사우나가 포함되어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대체 이걸 어째야하나...핀란드에 왔으면 구경할건 별로 없어도 사우나라도 경험을 해봐야겠다 싶더라. 그래서 일단 수영복을 가지고 가보기로 했다.


첫날 핀란드 동료분들이랑 저녁식사를 하면서 같은 테이블에 않으신 분께 정말 꼬치꼬치 궁금한 것들을 캐물었다. 디너와 사우나가 대체 어떤것인가. 가장 궁금한 것은 우리나라 찜질방 같은 개념으로 남녀가 함께 들어가는 것인가.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는 것인가였다.


핀란드에서는 가족들끼리만 사우나를 하는 것이 아니고 공공 사우나도 많으며 이렇게 프로페셔널한 미팅이나 워크샵 프로그램에도 사우나가 껴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건물에 사우나가 있다고. 그냥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큰곳, 작은 곳, 뷰가 있는 곳, 테라스가 연결된 곳 등등 여러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 정말 신세계이다. ㅎㅎㅎ 원래 목적은 사우나인데 저녁을 먹긴 먹어야하니 디너와 사우나가 된 것이라고. ㅎㅎㅎ 주객전도가 따로없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닌 경우에는 대부분 남녀 사우나가 따로 되어있거나 시간을 정해서 몇시부터 몇시까지는 여자시간, 그 다음 타임은 남자시간 이런식으로 따로 사우나를 이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동성끼리 사우나를 하는 경우에는 맨몸으로 사우나를 한다고. 내가 수영복을 가져왔는데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도 되냐고 했더니 동료분이 곰곰히 생각하시더니 ‘그래도 되긴 한데 좀 어색하지 않을까 해요’라고 하셨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우리나라 목욕탕에 왠 외국인이 수영복을 입고 들어오면 수영복을 입은 사람도 그를 보는 사람도 좀 어색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바로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둘째날 디너와 사우나 시간에는 수영복을 가지고 가지 않기로 했다.


시간표에 나온대로 저녁 여섯시에 뷔페스타일 저녁식사를 시작했는데 일곱시정도가 되니 누군가가 사우나에 가자고 하더라. 나는 신이 나서 제일 먼저 사우나로 직진했다. 사우나실에 들어가보니 타올도 다 있고 심지어는 가운도 다 있더라. 남자들은 남자사우나에 여자들은 여자사우나에 들어가서 열을 올린 뒤 가운을 입고 중간에 있는 테라스에서 몸을 식혔다. 저녁식사와 사우나가 있었던 6층 테라스는 경치가 참 좋았다.


핀란드 사람들은 북유럽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나 반응이 미적지근한 사람들이다. 워크샵을 하면서도 누군가가 좋은 의견을 내거나 멋진 발표를 해도 다들 그냥 미적지근하게 고개를 끄덕일뿐 ‘그거 참 좋은 생각이네요!’ 이런 반응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같이 저녁을 먹고 술도 몇잔 하고 알몸으로 사우나까지 하고 나니 그들은 웃으며 자기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는 재미난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아무리 여자들끼리라고 해도 잘 모르는 동료들이랑 알몸으로 사우나를 한다는 것이 참 부끄럽고 이상했는데 사우나 안의 동료들은 그냥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누구 배가 더 튀어나왔는지 누구 가슴이 더 컸는지 누구 몸매가 좋았는지 그런것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렇게 사우나를 하며 서로에 대해 마음을 여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핀란드 사람들에게는 매우 필요한 의식이 아닌가 싶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면서도 햇볕 쨍쨍한 헬싱키의 봄 밤은 ‘이게 바로 핀란드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일을 하느라 헬싱키는 아무것도 구경하지 못했지만 워크샵 프로그램에 포함되어있던 사우나는 핀란드가 어떤곳인지 알게 해주는 좋은 경험이었다.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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