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결혼한지 3년이 되었지만 아이가 없다. 아이를 절대 낳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박한 마음으로 마음 고생하며 아이를 가지려고 온갖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다.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적으로 생기지 않으면 그냥 그런대로 살자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생기면 감사하게 낳고 기르면 되는 것이고 안 생기면 그냥 우리 부부 둘이 오손도손 더스티와 함께 신혼처럼 살면 되는게 아닌가. 그러다가 나중에 꼭 아이를 가져야겠다 싶으면 입양을 할수도 있는 것이고…


우리 둘은 이렇게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데 주위에서 항상 궁금해들 한다. 너희는 안낳냐. 좋은 소식은 없냐. 이게 꼭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더라. 서양에서도 이런 것들을 물어본다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다만 기분 나빠질 정도로 조언을 해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뿐.


얼마 전 직장 동료와 그의 남편이 집에 저녁을 먹으러 왔다. 그들은 작년 이맘때 아이를 낳아 이제 아이가 한살이 되었는데 나는 식사 준비를 하느라 몰랐는데 동료의 남편이 파파에게 자기는 아이를 낳고 싶어도 못낳는 사람들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에게 너무 안됐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나중에야 그런 이야기를 듣고 정말 기분이 나빠졌다. 그는 우리를 친한 친구로 생각해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그는 동료의 남편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인지라 그런 오지랖은 전혀 고맙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가 노력해도 아이를 못낳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하게 된건지...우리가 봤을 때엔 지난 일년간 아이 때문에 어쩔줄 몰라 쩔쩔매는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 안되 보였는데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남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이 내가 알지 못하는 길을 가고 있으면 ‘저렇게 하면 안되는데’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 하시는 어른들이 사실은 ‘이렇게 안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게 눈게 보여서’ 그런게 아닌가.


하지만 사실은 나 역시 그랬다. 우리 옆집에는 88세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다. 작년 여름 암 투병을 하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혼자가 되셨다. 잘 알지는 못했지만 할머니의 장례식엘 갔었는데 두분은 함께 사신지 50여년이 되었지만 결혼은 하지 않으시고 자녀도 없이 두분이서만 사셨더라. 그런데 장례식에서 든 생각이 자녀가 없으니 노년이 참 초라해 보이는구나 하는 것이다. 여든이 되셔서 자녀가 몇 있었으면 장례식에 자녀들 가족, 손자 손녀들도 있었을 텐데 할머니의 장례식에는 죄다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 뿐이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오면서는 ‘이래서 자식이 있어야 하는건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무슨 일이 있어서 할아버지 댁에 들어가 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손님이 와서 즐거우셨는지 할아버지는 집 구경도 시켜주시고 (이런 일이 노르웨이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옛날 사진첩을 꺼내 보여주셨다. 사진첩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젊고 멋지던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할머니는 외국 여행다니는 것을 좋아하셨다고 하는데 외국에서 휴가를 즐기시던 모습이나 가족 친지들이 모여 파티를 하는 모습 등 젊은 시절 즐거운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가장 만감이 교차했던 사진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할머니가 반라의 모습으로 스페인 남부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진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말기 암으로 고생하시며 초췌한 모습만을 봐왔는데 그분에게도 저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파파에게 했더니 자신도 얼마 전 드릴게 있어서 할아버지 댁에 갔다가 사진첩을 봤다고 한다. 그러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마도 우리가 알지 못할 정도로 와일드하고 즐거운 인생을 사셨을거란 이야기를 하더라. 아이가 없고 사업 성공으로 돈도 많이 버셨을테니 얼마나 씀씀이가 크게 즐겁게 사셨겠냐는거다. 아마도 매일매일이 파티의 연속이 아니었겠냐고 농담삼아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고나니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그분들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오만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단지 그 안을 들여다 본적이 없다는 이유에서 남의 인생이 행복했다 혹은 초라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 된 것인지 말이다.


그래도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역시 한가지 인생만을 살아봤는데 그와는 다른 인생이 어떤지 어떻게 아는가. 아이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이가 없는 중년이나 노년은 살아보지 않았지 않나. 단지 상상만 할 수 있을 뿐. 내 작은 상상의 울타리에 남의 인생을 가두어 저 사람의 인생은 행복하다 불행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 나에게 남이 모르는 무궁무진한 세계가 있듯, 남들에게도 내가 모르는 무궁무진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행복에 다다르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지 않나. 단지 내가 모르는 길이라고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만함이다.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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