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살기 전에는 수직적인 인간관계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우리말은 존댓말이 있어서 배우기가 어렵다던가 서양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를 이름으로 부른다라던가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던가. 항상 책이나 미디어에는 이런것들을 강조하지 않나. 그런데 항상 그렇듯 이런 선입견이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영어에서는 존댓말이 많이 사라졌지만 독일어에는 존댓말이 엄연히 존재한다. 다만 이것이 나이와 상관 없이 인간관계에서 거리감을 나타낼 때 쓰일 뿐. 예를 들면 독일어에서 ‘너’를 지칭하는 단어는 Sie(존칭)Du인데 주어가 어떤것이 되느냐에 따라 동사의 모양새도 다르게 됨으로 정말 확실하게 존칭이 맞다. 독일에서 몇년 살았던 친구가 하는 말이 자신이 독일어를 잘 못할때 길을 물어보거나 할 때 사람들에게 Du라고 지칭을 하다가 지적을 여러번 받았다는 것이다. 너랑 나랑은 친한사이도 아닌데 왜 자기를 Du라고 부르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ㅎㅎㅎ 하지만 우리가 들었던 대로 친한사이가 되는 즉시 호칭을 바꿔도 된다고 하더라. 마치 우리나라에서 ‘우리 사귄지 오늘 1일’ 이런거랑 비슷하다. 하여간 처음으로 파파의 부모님을 만났을 때 나는 대체 호칭을 어떻게 해야하나가 궁금했는데 당연히 그냥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시부모님을 이름으로 부르는 막되먹은 며느리 ㅎㅎㅎ 그래도 나는 한국사람인지라 그냥 이름을 부르는 것은 너무나 어색해서 mutti(엄마)paps(아빠)로 부르고 있다.


파파가 하는 말이 독일에서는 의사, 박사, 대학교수는 매우 대접받는 사람들인지라 박사를 받으면 심지어는 공식적으로 자기 이름에다가 Dr.라는 호칭을 붙일수도 있다고 하더라. 물론 자신도 박사를 받자마자 당장 그렇게 했다며 여권을 보여주는데 여권에 Dr. ㅇㅇㅇ 이라고 적혀 있다. 심지어는 박사의 부인 역시 이름을 Frau Dr. ㅇㅇㅇ로 부를 수 있다더라. 그래서 이렇게 되면 뭐가 좋냐고 했더니 누군가가 (경찰이나 관공서 직원 등등) 자신에게 무례하게 대할 경우 ‘나를 full name으로 불러주시오’라고 하면 그렇게 해야하는데 그러면 무례하게 자신에게 막대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을 닥터 ㅇㅇㅇ라고 불러야 한다고. ㅎㅎ


언뜻 봐서는 독일과 비슷할것 같지만 노르웨이는 독일과는 다르게 사회구조나 인간관계가 매우 수평적이다. 노르웨이어에서는 존댓말을 (그 흔적이 남아있기는 하나) 거의 쓰지 않는다. 노르웨이 문화를 소개하는 책자에 보면 노르웨이에서는 심지어는 왕에게도 인사할 때 그냥 ‘하이’라고 한다고 나와있다. 그냥 우스겟소리로 하는 말인지라 노르웨이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그렇게 할 수도 있긴 있겠지만 진짜로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고 ㅎㅎㅎ


Mondå Forlag: Bridging cultures | Norway | By Julien S. Bourrelle


한번은 회사에서 리더쉽 워크샵이 열려 참가를 했는데 점심시간에 진행자분 옆에 앉게 되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분은 가끔씩 이렇게 리더쉽 워크샵에서 강의를 하지만 그것은 그냥 취미로 하는 것이고 원래는 수학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은퇴를 하고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그럼 학생들이 당신을 닥터 ㅇㅇㅇ라고 부르나요?’라고 물어봤더니 그분이 놀라며 하시는 말씀이 노르웨이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을 이름으로 부른다는게 아닌가!?! 그래서 아무리 박사건 뭐건 그냥 이름으로 부른다고 하시더라. 놀랍다...왕에게 하이라고 인사를 하는 것은 그냥 농담이라고 해도 학교에서 학생들이 선생님을 그냥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직접적인 것이라 더 놀랍더라. 그런데 이와 비슷한 경험을 직접 하게 된 곳이 병원이었다. 의사들이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닥터 ㅇㅇㅇ이라고 하지 않고 이름으로 한다는 거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당신을 진료하게 될 Lars에요.’ 이런식인거다. 처음에는 이 의사가 너무 젊은 사람이라 그런가 싶었는데 그냥 항상 이렇더라.


언어와 사고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라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도 바뀌지 않나. 그러니 언어가 이렇게 수평적이라는 것은 사고방식도 그렇게 바뀌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노르웨이에서는 언어나 호칭만 그런것이 아니고 거의 모든것이 수평적이어서 인간관계뿐 아니라 직급이나 월급등등도 거의 수평적이다. 그래서 노르웨이에서는 ‘내가 누군지 알아?’이런 갑질이 통하지 않을것 같다. 왕에게도 수상에게도 ‘하이’라고 인사하고 수상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고 왕도 기차를 타고 스키를 타러가는 마당에 갑질이라는 것이 통할리가 있겠나. 당신이 누구이던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이던 어느 재벌의 딸이던 그게 무슨 상관인가 결국엔 다 같은 인간인데 말이다.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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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 독일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름을 불러주면 들어가 진료를 받을 수 있거든요. 그때 "Doktor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박사라는 타이틀은 대학에서만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병원에서도 그렇게 부르는 것을 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