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공부를 한 사람이라 꽤 나이가 들어서까지 친척분들께 용돈을 받았다. 대학 들어갔을 때엔 대학갔다고 용돈,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지방에서 서울에 살면서 공부하기 힘들지 하며 용돈, 유학갈땐 장하다며 용돈, 유학하면서 가끔 한국에 들어가면 외국에서 공부하느라 힘들지 하며 용돈. 이렇게 서른 넘어까지 친척분들께 뜯어낸 용돈은 결혼을 하며 축의금을 끝으로 막을 내린 것 같다. 받을 때엔 그래도 감사하게 받았지만 돈을 버는 어른이 된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분들이 넉넉하신 살림이었건 아니었건 적지 않은 10만원 30만원을 그냥 선뜻 봉투에 담아주신 친척분들의 정성이 정말 대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돈을 벌고보니 누군가에게 30만원 건내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던지. ㅎㅎㅎ


나는 이렇게 친척분들께 큰 돈을 염치 없이 덥석덥석 받고 자라서 그런지 이젠 친척 조카들을 만나면 왠지 용돈을 쥐어줘야할것만 같다. 그런데 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한국에서 돈쓰는 감이 많이 떨어져 한국에 가면 돈가치가 어떻게 되는지 참 잘 모르겠더라. 몇년 전에 한국에 갔을 때 친척 조카와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초등학교 6학년인 조카에게 용돈을 주고 싶은데 대체 얼마를 줘야할지를 모르겠던 것이다. 그 용돈이란 것이 너무 많이 줘서 다음번 기대치가 너무 높아지면 안되지만 또 너무 적게줘서 아쉬워도 안되는 것이 아니겠나. 얼마를 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엄청 고민을 많이 했던 것은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야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용돈주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은지라 한번은 파파의 친척집에 갔을 때 대체 독일에서는 이런 관습이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했다. 사촌 조카가 세명 있는 친척집에 놀러갔는데 집에 돌아갈때 파파에게 애들에게 용돈을 줘야되는지 물어봤더니 파파가 놀라며 하는 말이 독일에서는 그렇게 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놀러갈때 작은 사탕같은 선물을 사가는 것은 괜찮은데 돈으로 주는 것은 애들 버릇나빠진다고 싫어한다고 한다. 선물도 너무 소박하게 사탕 하나정도라니.


이런 관습은 아이들에게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더라. 우리야 명절이나 생신이되면 부모님이나 시부모님께 돈을 좀 쥐어드리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데 독일에서는 정말 아니었다. 몇년 전 나의 시어머님의 65세 생신 잔치가 성대하게 (?) 열렸는데 (독일에서는 은퇴한 뒤 처음 맞는 65세 생일에 우리나라 환갑잔치처럼 큰 잔치를 한다) 그때 아버님이 주도하여 여러 사람들이 돈을 모아 어머님께 큰 선물을 사드렸다. 엄청 비싼 선물을 받았다고 어머님께서 정말 감격하셨는데 그 엄청 비싼 선물의 가격은 300유로가 조금 넘는 것이어서 좀 놀랐다. 그정도 가격이면 그냥 내돈으로 하나를 사드렸어도 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처음에는 이런 문화가 우리 집안 사람들만 엄청 짠돌이라 그런줄 알았는데 다른 독일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정말 그정도 선물은 독일에서는 엄청 비싼 선물에 속한다고 하더라. 보통은 100유로정도 선물이어도 꽤 비싼 것이라고. 그런데 65세 잔치였기에 특별한 선물이라 그정도를 받는 것이라고 하더라.


연말이나 명절에도 나는 왠지 어머님께 용돈이라도 좀 드려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는데 파파에게 물어봤더니 독일에서는 선물을 주고 받는 것은 좋지만 돈으로 주면 너무 성의없는 것이라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하더라. 작은 정성이 담긴 것을 주고 받는 것이 훨씬 좋은것이라고. ......근데 그걸 누가 모르는게 아니지 않나. ㅎㅎㅎ 우리야 합리적으로 크고 작은 정성이 담긴 돈을 주고받는 것일뿐인데 ㅋㅋㅋ 그래도 그나마 파파는 내가 우리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것은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서로 문화의 차이가 있는 것일뿐이라는 입장이라 다행이다. 별것 아닌것 같지만 문화의 차이를 몰랐다면 얼마나 오해가 많이 생길 수 있는 것인가 ㅎㅎㅎ


그래도 나는 한국사람인지라 한국에 가면 친척분들께도 조카애들에게도 용돈을 주겠지만 독일의 시댁 식구들에게는 마음과 정성만을 드리려고 노력중이다. 말만 들으면 쉬울것 같지만 마음과 정성을 드리는 것은 얼마나 힘든일인지 모르겠다. 정성이 담긴 카드를 써서 드리거나 정성이 담긴 작은 선물을 보내드리는 것은 돈을 송금해드리는 것보다 얼마나 힘든일인지 ㅎㅎㅎ 이렇게 나는 게으르고 성의없는 독일 며느리가 되어가고 있다.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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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감해요!! 저는 미국 시댁 가족들 생일 때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 작은 선물과 카드를 보내드려요. 여기도 용돈 보다는 정성이 깃든 작은 선물과 직접 쓴 카드를 좋아해요. 그런데 늘 선물 고를 때마다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그냥 용돈 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