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거의 6개월간동안 읽은 오르한 파묵의 순수박물관 (The Museum of Innocence)’ 드디어 마무리 지었다.  그리 어렵거나  소설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막장드라마에서나   있을 만한 주인공의 안일한 행태가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을 굉장히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읽다가 답답해서 접었다가 한참이 지난 뒤에 다시 읽기를 시작했다가를 반복해서 읽었기 때문이다. 욕하면서 끝까지  보는 막장드라마처럼  소설도 주인공에게 답답한 마음에 욕하면서 그래도 끝까지 읽었다.


사실 나는 소설을 읽기 전부터 순수 박물관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2년전 유럽에 출장을 갔다가 어찌저찌하여 이스탄불에서 닷새정도 시간을 보낼  있게 되었는데 그때 이스탄불에 있는 순수박물관에 직접 가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이름은 빨강이라는 소설을 읽은  오르한 파묵의 팬이 되었다. 노벨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의 소설들은 스토리텔링이 매우 뛰어나다.  동서양의 과도기속에 수천년을 지내고 있는 터키의 존재감을 고찰하는데 이런 고찰은 동서양의 과도기를 지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크게 다른것 같지 않아 많이 공감을 하게 된다.

 

이스탄불에 가기  그리고 이스탄불에 있는 동안 나는 이스탄불에 관한 여행 책자를 읽는것 보다 오르한 파묵의 수필집 이스탄불 읽기로 했다. 이스탄불에서 나고 자라 이스탄불을 매우 사랑하는 작가 오르한 파묵이 바라본 이스탄불은 대체 어떤 곳일까.  수필집에서 오르한 파묵은 자신의 어린시절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어린 오르한의 눈으로  과도기의 이스탄불을 추억한다. 덕분에 매우 발전된 현대적인 이스탄불 곳곳에 숨어있는 과도기적 이스탄불의 모습을     있게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시절 그곳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으로 오르한 파묵이  내내 이야기해대는 이스탄불의 멜랑콜리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건 내가 이스탄불에서 나고 자란  또래 친구에게 물어봐도 자기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라고 하더라. 과도기의 이스탄불에서 나름 부유하게 자란 작가가 가지고 있는  부유층의 멜랑콜리를 다른 시대에 부유하지 않게 자란  친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의 수필집 이스탄불을 읽다 문득  생각이 혹시 수필집에 나오는 그가 나고 자란  집이 작가가 노벨상을 받고나서 박물관처럼 만들어져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검색을 해봤는데 왠걸...그의 집은 아니어도 오르한 파묵이 설립한 박물관이 이스탄불에 있는게 아닌가! 이스탄불의  외곽에서 길을 걷다가 영어로 크게 써있는 ‘The Museum of Innocence’라는 표지판을 보고  이상한 이름의 박물관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박물관이 바로 오르한 파묵의 박물관이었다.


길가에 있는 순수박물관 표지판


박물관이 있는 건물. 일반 주택에가 있다. 실제로 일반 가정집을 사서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가디언지에 나온 순수박물관과 오르한 파묵 (일반은 박물관 내부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벽면을 가득 메운 퓨선의 담배꽁초들


순수 박물관은 실제로 박물관이기도 하고 오르한 파묵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소설을 쓰는 동시에 박물관 건립을 기획했다고 한다.  박물관이라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고 잡동사니 컬렉션이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보이는 벽면을 뒤덮은 것은 다름아닌 담배꽁초들. 소설속 주인공이 사랑한 여인이 피다 버린 담배꽁초를 정확한 날짜와 시간까지 기록해서 모아놓았다. 순수 박물관은  여자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집착이 순수에 도달했다고 하여 순수 박물관이라고 한다. 박물관에 있는 물건들은 소설속 주인공인 케말이 사랑했던 여인 퓨선을 기억하기 위하여 그녀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수집한 집합체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자신의 이야기를 유명 소설가 오르한 파묵을 통하여 책으로 쓰고 수집한 물건들로 박물관을 건립하는데  박물관이 바로 순수 박물관이다. 현실과 허구를 절묘하게 엮어내는 오르한 파묵의 작가적 능력의 결정체라고   있다.


소설 순수 박물관은 70년대와 80년대를 배경으로 부유한 집안의 남자 케말이 상류층 신여성 약혼녀를 버리고 부유하지 않고 서구 교육도 받지 못한  사촌 여동생 퓨선을 사랑한 이야기이다. 내용만으로 보면 참으로 통속적인 내용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 같은 소설인데  내면에는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터키의 시대적 배경이  녹아들어가 있다. 유럽 문화를 받아들이던 시대였지만 여전히 여성에게는 순결을 강조하는 사회. 유럽식 교육을 받은 신여성이지만 이러한 순결 강요 사회에서 갈등을 하며 살아야하는 여성들. 서양식 문물이 범람하는 사회에서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살아야 하는 터키의 젊은이들. 그리고 그러한 사회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진실되게 표현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며 가식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 결국에는 이런 모습들이  소설의 주제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소설은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들만이 진정한 행복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동과 서의 문명이 만난 이스탄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값진 경험은 순수 박물관에 가게  것이었다. 박물관에 다녀온지 2년이 지나 소설을 읽게 되었지만 언젠가 이스탄불에 다시 가게 되면 순수 박물관에 다시 한번 다녀오고 싶다.  속에 보면 박물관 입장 티켓이 들어있는데 박물관에 있을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전세계 어느 언어로 번역되었던간에 순수 박물관 책을 가져오면 책속에 있는 티켓에 도장을 찍어주고 무료 입장을 시켜준다고 한다. 다음번엔  책을 가져가야지 ㅎㅎㅎ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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