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저번주 추석 연휴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가족 친지들을 찾아뵈었겠지만 나는 우연히 한국 추석 연휴기간에 시댁에 가게 되었다. 시댁 근처로 나와 파파   출장을 가게 되어 시댁에 들른것이기도 하지만 그때가 시아버님 생신이었기도 했고  크리스마스에 찾아뵙지 못할것이기 때문에 미리 가족들을 만나러 가게된 것이다.


나는 시댁에 가는 것이 좋다. 이번에 명절 연휴기간 한국 며느리들의 한탄을 간접적으로 전해들으며  나는 시댁에 가는것이 마음 편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파파의 가족들은 독일이 통일되기  동독에서 살다가 통일이  이후 서독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같은 독일인들이지만 동독에 살던 사람들과 서독의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고 한다. 여러가지로 다르겠지만 동독에서는 일단 남자 여자 할것 없이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해야했기 때문에 동독 사람들은 서독 사람들에 비해 매우 가정적이라는 것이 파파뿐 아니라 여러 동독 출신 동료들의 의견이다. 다들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러갔다가 정해진 시간에 집에 돌아오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집에서도 남녀가 평등한 존재일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가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동체 의식이 강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파파의 말에 따르면 지금 노르웨이의 모습, 그러니까 여자들의 파워가 매우 세고 남녀가 매우 평등한 이런 모습이 옛날 동독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여자들도 사회 전반의 중요한 위치에서 일을 했었고 직업에 남녀 차별이 없어서 나의 시어머니는 1970년대에 도시공학을 전공하시고 도시설계에 참여하셨을 정도이다.


이렇게 남녀가 사회적으로 평등했기 때문에 가정에서도 평등해서 거의 대부분의 경우 집안일이나 음식을 하는 것도 그랬다고 한다. 나의 시댁에서는 시어머니는 주중에 식사준비를 하시지만 주말에 하는  요리들은 대부분 시아버지께서 하신다. 특히나 중요한 손님접대를 할때 거창한 요리를 하게되면  요리의 준비는 항상 시아버지 몫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크리스마스때 오지 못하는 아들을 위하여 거위요리를 하셨는데 이게  아버님의 솜씨였다. 우리들은 맛있게 먹고 감사하는 역할만을 담당했다.



시댁이 편한  다른 이유는 나의 시부모님이 우리들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시고 우리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하시는데에 있다. 애시당초 고집불통 박사 아들에게 단련되신 우리 시부모님은 똑같이 고집불통 박사 며느리에게도 이런것이 안통한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 독일어는 언제 배울거니, 아이는 언제 낳을거니, 집은 언제 사니 이런 질문들 나올법도 한데 그런 부담스러운 질문은 절대 안하신다. 대신 우리가 했던 이야기들을  기억해두셨다가 정말 구체적인 질문들을 하신다. 우리 이야기는 귀담아 들으시고 나중에 그와 관련된 질문들을 하신다. 스발바르에서는  했니, 한국가서는  먹었니, 동생 결혼식때에는  했니 그런 질문들을 하신다. 그런 질문들에는 답이 있다. 그러니 그렇게 구체적인 질문을 하시면 답하는 사람도 편하지 않나.


나는 우리네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어른은 어른다워야한다. 한살이라도 많아서 형님이라면 형님답게 본보기를 보여야하고 어른이 되었으면 젊은 사람들 잘 살고 있나 살필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메뉴얼대로 살고있지 않다면 가이드를 해주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이가 많은 '형님'은 아우에게 항상 꼰대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겠나. 그런데 독일에서는 그런것이 조금 덜한것 같다. 우리도 어른이니 어른으로 대접을 받는다. 나의 시부모님은 우리가 여지껏 다 잘 해왔으니 앞으로도 잘할것이라고 생각하신다. 간혹 좋은 충고를 해주시기도 하시지만 워낙에 파파가 그런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우리가 조언을 구하지 않는 다음에야 조언을 듣지 않는다.


나는 우리의 어르신들이 젊은 사람들이 못마땅해서 항상 공부는 잘하니, 엄마아빠 말은  듣니, 취직은 언제하니, 결혼은 언제하니, 애는 언제 낳니 이런  없는 질문들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누구에게나 속이 베베꼬이신 어른스럽지 않은 친척분 혹은 아는 어르신이 계시기는 하다 ㅎㅎㅎ) 어르신들은 얼마나 젊은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하고싶으시겠나. 그런데 우리의 어르신들은 어려서부터 다른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을 입다물고 듣기만 해야했고 그렇게 당신들이 어르신이 되었으니 대화의 기술이 뭔지를 모르시는 것이다. 그러니 항상 당신의 말씀만을 하시고 뭔가 가르치려고만 하시지 정작 젊은 사람들과 대화 할줄은 모르시는 것이다. 정말 이야기를 하고는 싶으신데 할줄을 모르시니 나름 메뉴얼에 나와있는 취직은 언제하니 이런 질문이나 하시는 것이 아닐까. 나는 시댁쪽 식구들을 만나면 항상 놀라운 것이 나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굉장히 구체적인 질문들을 하신다. 너희집에 개를 키운다며 어떤 종의 개니 이런 질문들을 하시니 답하기가 얼마나 편한가. 그리고 자연스럽게 끊이지 않고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나.


대화의 시작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이 아닌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이야기를 즐겁게 귀담아 들어주시는 나의 시부모님. 이런분들을 만나러 가는 것인데 어찌 불편할리가 있나.


이번에는 내가 시아버지께 내년에 한국에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너무 비싸서 생각을  해보셔야겠다고 하신다. 게다가 옆에 있던 파파도 우리돈으로?’ 이러더니 ...나도  반대인데...’ 하며 웃는게 아닌가. 아니 내가  돈으로 자기 부모님 여행 보내드린다는데 싫다는 파파나 비싸다고 싫으시다는 시부모님이나...아직  적응 안되는 나의 가족들이다.



Posted by Dusty B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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